이것은 진짜 있었던 실화이다.
월남전에 참전한 효자 박 일병은 첩첩 산중에 살고 계신 부모님께
문명의 맛을 보여주리라 생각하고는, 요즘 맛을 들이기 시작한 문명
의 결정체 커피를 고향으로 보냈다.
부모님께서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방법을 모르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 글을 모르시는 부모님을 생각해 그림으로 커피를 뽑는 방법을
자세히 묘사해서 보냈다.
소포 꾸러미가 월남에서 첩첩 산중으로 날아왔다. 우편 집배원은
도장을 달라 하여 조그만 종이에 꾹 한번 누르더니 따르릉 자전거를
울리며 산 아래로 사라졌다.
"이게 무어여?"
"월남간 큰아가 보낸 것 같은디요."
박 일병의 노부모가 소포 꾸러미를 풀어보니 깡통 하나와 그림이
그려진 종이가 있었다.
"사람 하나가 엎드려 절하는 모습이 그려진 걸 봉께 아들놈이 안녕
하시냐구 인사하는 갑네유."
"그렇구먼. 여기 양 팔뚝을 실하게 그린 걸 봉께 지도 잘 있다구
하는것 같구먼."
"아따~ 영감은 박사여. 척하면 척이구먼유. 근디 이 깡통은 뭐데요?"
"허~ 나도 잘 모르겄는디?"
부모님은 내용물이 궁금해 부엌칼로 깡통을 땄다. 그 안에는 거무
튀튀한 커피가루가 가득했다. 그래도 알리가 있나. 마침 동네에서
참견 잘하고, 아는 척 잘하는 김 영감이 지나가다가 다가왔다.
"뭔디 그랴?"
"아, 글씨 아들눔이 월남에서 뭘 보내 왔는디, 당최 뭔지 잘 모르
겠구먼"
한글은 조금 알기에 그냥 편지이겠거니 생각한 김 영감이 받아본
종이 쪽지에는 그림만 있고, 깡통엔 모두 꼬부랑 영어로만 글씨가 써
있는것이 아닌가.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김영감은 그림과 깡통을 번갈아 보다가
커피가루를 찍어 맛을 보더니 무릎을 탁 쳤다.
"이거이 미제보약이여!"
"미제보약?"
"그림을 보드라고. 그림 맨 밑에 있는 거이 그릇이 아니든가? 그
위에 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위에는 새까만 걸 그렸지 않은가베.
그리고 그 위에서 물을 붓고 있지 않나벼? 그게 보약 끓이는것 아닌
가베. 그리고 맛도 엄청 쓰구먼. 쓰면 보약이라고 안 하던가? 천하의
효자 아들이 제 부모 위해 보약을 보냈구먼 그려."
"그렇게 봉께 또 그렇구먼."
박영감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몬 우리만 보약 먹으면 못 쓰제. 김영감은 동네사람 다 부르소.
칡뿌리 하나라도 나눠먹는 벱 아닌가 말여?"
그날 저녁, 동네 사람들이 박일병네 집으로 다 모였다. 박일병의
어머니는 아예 가마솥에다 불을 지펴 광목 천을 얹은 후 깡통의 커피
를 다 쏟아 붓고는 물을 가마솥 가득 채웠다.
"미제 보약은 참으로 별난 냄세가 나네 그려."
동네 영감님 한분이 연신 코를 킁킁 댔다.
"그래서 미제 보약이지. 별나지 않으면 우리나라 보약과 똑같게?"
김 영감이 한 마디 쏘아붙이자 이곳 저곳에서 박장대소를 하며 옳다
는 소리를 했다.
드디어 박일병 어머니가 광목 천과 그 속의 커피를 꺼냈다. 가마
솥 안에는 시커먼 커피가 끓고 있었다.
"자 한사발씩 하드라고"
박 영감은 막사발에 커피를 한가득 퍼 마을 사람들에게 돌렸다.
그날 밤, 초저녁만 되면 잠을 자던 박 영감 부부는 희한하게도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려 보았지만 눈만 말똥
말똥 해졌다.
그것은 박 영감네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 모두에게 일어나 똑같은
현상이었다. 온 밤 내내 늑대 울음소리를 들으며 꼬박 새고 닭 홰치는
소리를 맨정신으로 들어야만 했다.
그로 부터 열 달 후, 첩첩 산중의 조그만 마을에는 집집마다 생일이
같은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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