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전대란을 취재하면서 오래간만에 해가 있을 때 퇴근했다는 한인을 만났다.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영업하는 그는 캐나다부터 사우스 뉴저지까지 정전이란 소식을 듣고는 모든 것을 접고 집에 들어갔다. 방학중인 자녀와 오래간만에 평일 저녁식사를 바비큐로 촛불 밑에서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퇴근도 못하고 덥고 긴 밤을 업소 앞에서 꼬박 지샜다는 한인도 많았다. 셔터문이 안 내려와 업소 안 귀중품을 지키기 위해 경비병 노릇을 했던 업주의 모습은 지칠 대로 지쳐 보였다. 그는 9.11 테러 때 보다 더 고생을 했다고 한다. 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한인은 20층까지 걸어 올라간 뒤 물마저 안나오는 바람에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하고
무더운 밤을 보냈다.
교통 신호등이 몇번 깜박깜박하다 멈춰버리면서 시작된 이번 정전대란으로 현대사회가 너무 전기에 의존해 산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전기로 연결된 전화는 불통이고 컴퓨터화된 업무는 마비됐다. 라과디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바라보이는 퀸즈블러바드 고가철로에 멈춘 전철을 쳐다보면서 그 안에 갇혀 발을 동동 구를 사람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이 앞섰다.
자녀와 부모, 누나, 오빠, 동생 등 전화 불통으로 가족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답답한 상황에서는 전쟁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란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다. 퇴근길 미드타운 터널 앞에서 자신의 도착지를 적은 종이를 들고 지나가는 차에게 손을 흔드는 시민들을 볼 때는 한국에서 TV로 보던 6.25로 헤어졌던 가족상봉 모습이 떠올랐다.
촛불을 켜 집안을 밝히고, 차가운 물로 아이들을 씻기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전기가 실생활에서 이렇게 중요한지를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펜실베니아주에 거주하는 아미쉬족을 연상했다. 현대 문명을 배척하고 종교적 전통을 고집하며 전기가 들어오는 지역에 살면서도 전기를 이용하지 않고 자동차 대신 마차를 타고 다니던 아미쉬족들에게 이번
정전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 소식은 알고 있을런지?.
여름에 자연과 가까워지겠다고 캠핑을 가면서도 전기가 들어오는 캠프장을 더 선호해온 과거를 돌이켜보며 가끔은 디지털 시대에서 벗어나 아날로그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삶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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