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우리 가족은 로즈힐스 공원묘지에 다녀왔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매년 추석 전 토요일에 로즈힐스 채플에서 합동추모예배를 갖고 있다. 올해도 우리는 시어머님과 함께 추모예배에 참석한 후 두 군데 묘지에 들러 성묘하고 돌아왔다.
장미꽃이 만발한 로즈힐스 메모리얼 팍에는 나의 가까운 친지 세분이 잠들어 계신다.
처음 이곳에 누우신 분은 내가 가장 존경했던 둘째 형부 유현수님.
그때가 벌써 1984년, 19년전이니 내년 5월 보라색 자카란다 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형부의 20주기가 돌아오게 된다. 당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셨던 형부는 37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그 때의 충격과 슬픔은 지금도 생각나면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새파란 나이에 과부가 된 언니는 지금까지 꿋꿋하게 혼자 살면서 두 딸을 잘 키워냈다. 초등학생이었던 조카들이 지금 서른살 노처녀들이 되었으니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음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인가.
그로부터 12년후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 그때도 갑작스럽고 경황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평소 술을 많이 하셨던 아버님께서는 건강이 좋지 않으신 편이었지만, 아무 예고 없이 어느날 누우시더니 하루 앓으시고 조용히 소천하셨다.
말씀은 없으셨지만 하나 뿐인 외며느리, 나를 많이 사랑하셨고 하나 뿐인 손주, 우리 아들을 끔찍이 위하셨던 아버님.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어느덧 7주기가 다가오는 것이다.
작년 11월에는 시할머님께서 96세를 일기로 천수를 다 하시고 이곳 로즈힐스에 묻히셨다. 평생 건강하게 살아오신 할머님께서는 구순이 넘도록 집안 일을 쉬지 않으셨고 눈과 귀가 밝으셨으며 틀니도 팔순이 넘어서야 하셨을 정도로 정정하셨다. 그 분의 건강 비법에 관해 가족들은 ‘소식’과 ‘노동’이라고 분석하곤 하였다.
꽃다발 두 무더기를 사서 아버님 묘소에 들렀다가 할머님 묘소를 찾아갔다. 나날이 지경을 넓혀가는 로즈힐스는 올 때마다 새로 개간한 곳에 장지를 만들고 있어 할머니의 묘소는 가장 최근 조성된 구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매일 죽고 매일 묻히러 온다는 뜻이겠지. 나는 언제쯤, 어느 부근에 묻히게 될까.
남의 결혼식에 가면 나의 결혼식이 생각나고, 남의 장례식에 가면 나의 장례식 장면을 미리 상상해보게 되듯이, 묘지에 갈 때면 언젠가 내가 흙으로 돌아갈 그 날을 생각하게 된다. 아예 한평 땅 차지하고 누울 것 없이 깨끗이 화장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해보고.
내일은 좋은 추석, 풍성한 한가위에 웬 방정맞은 이야기, 쓰잘데없는 궁상이냐고?
이 수확의 계절에 조상의 묘를 찾아뵙는 우리의 미풍양속이 나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심었으면 거두는 것이 있듯이, 삶이 있는 곳에는 죽음이 있고 삶의 완성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의 수확이 나의 애쓰고 수고한 결과라기보다 조상의 은덕이라며 묘소를 찾아 감사할 줄 알았던 지혜가 어찌 아름답고 겸손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한해가 저물어가는 가을, 수많은 망자들이 끝간데 없이 누워있는 묘지 동산에서 나는 내 인생을 수확할 계절에 무엇을 거둘 수 있을지 진지하게 자문해본다. 알곡으로 남기는커녕 타작마당에서 버려지는 쭉정이 같은 인생이 되지나 않을지, 정작 해야할 일들은 산더미 같이 쌓아두고, 가장 중요하지 않은 일에 핏대를 올려가며 열심을 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매번 그렇지만 형부의 묘소는 따로 찾아뵙지 못하고 돌아섰다. 형부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남편, 시어머님, 아들을 대동해 성묘하기는 별스럽게 느껴지는 탓이다.
아울러 한국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오빠의 산소에 성묘하지 못하는 마음을 이 글로 달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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