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국가대표 배구선수로 80년대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며 인기를 끌었던 홍기택(사진)씨가 롱아일랜드 힉스빌에서 아들 진형(13·요나속중 7년)군을 농구 선수로 키우기 위해 뒷바라지하고 있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진형군은 13세이나 192cm의 장신에다 지금도 키가 크고 있다. 아버지를 닮아 운동 신경 역시 뛰어나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한국서 중고교 농구팀 감독들이 책임지고 키우겠다며 여기저기서 손을 내밀었지만 농구 본고장인 미국서 제대로 배우게 하고 싶어 얼마전 뉴욕에 왔다.
충남 조치원 출신인 홍기택씨는 운동 선수로는 늦은 나이인 고2때부터 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195cm의 장신에 타고난 감각으로 청주 청석고를 사상 처음 전국대회 4강에 진출시키는 등 특급 센터로 각광 받았다. 성균관대에 진학해서는 김남성(현 명지대 감독) 감독의 지도 아래 왼쪽 주공으로 변신, 성균관대를 강호로 군림케 했으며 3년 때는 신입생 노진수(현
LG감독)와 함께 슈퍼리그 원년대회에 출전, 실업의 강호 등을 잇따라 꺾는 돌풍을 일으켰다.
84년 금성사(현 LG화재)에 입단해 다시 센터로 복귀, 당시 강두태, 김상보, 김찬호(현 경희대감독) 등과 함께 실업 1년차로 소속팀을 슈퍼리그 결승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81년부터 87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했으며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도 두 차례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 85년 고베 대회서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다.
현역 시절 손 모양이 좋고 블로킹 타이밍이 뛰어나 상대팀 공격수들의 스파이크를 무용지물로 만들었으며 뛰어난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속공 능력도 뛰어났다. 특히 83년 ‘백구의 대제전’으로 불린 슈퍼리그 출범과 함께 배구가 한국에서 최고의 겨울 스포츠로 인기를 끌자 잘 생긴 외모와 운동 선수 답지 않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홍마담’, ‘미스 홍’이란 별명을 얻
으며 소녀 팬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직까지 당시의 활약 사진과 팬 레터 등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 92년 현역에서 은퇴하자 LG화재의 코치로 승진해 97년까지 지도자 생활을 했다.
뛰어난 배구 실력과 지도자로서의 능력도 갖춘 홍기택씨는 배구만큼은 분명히 미국보다 한국이 한 수 위라며 아직까지 뉴욕에서 배구 지도자나 관련된 일을 하지 않고 있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미국 배구 발전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장래준 기자>
jraju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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