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인구가 많지 않은 중소도시에 살다가 LA, 뉴욕, 시카고 등 대도시를 방문하면 가장 가슴 뛰게 반가운 것이 ‘한글’이다.
영어 일색인 미국의 거리에서 한글 간판을 발견했을 때의 코끝 찡한 감동을 대도시의 한인들은 실감하지 못한다. 코리아타운에 들어서 줄줄이 늘어선 한글 간판들을 보노라면 고향에 온 듯한 푸근함에 휩싸인다. 정겨운 우리의 글, 한글의 힘이다.
그렇게 반가운 ‘한글’이 반갑지 않을 때가 있다. 얼마 전 중가주의 한 노천 온천장에 다녀온 주부는 ‘한글’ 때문에 낯이 뜨거웠다고 했다. 인공 건축물 안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천연 온천이어서 캘리포니아 한인들에게는 특히 인기가 있는 온천장이다.
“온천장에 도착하니 한글로 경고문이 붙어 있는 겁니다 -‘때를 밀지 마시오’. 영어 안내문 옆에 한글 안내문이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글로만 쓰여 있었어요”
한인들이 얼마나 때를 밀었으면 이런 글이 붙었을까 싶은 얼굴 화끈거리는 수치감, 그리고 물 속에 때가 떠 있을 것만 같은 찜찜함 때문에 결국 온천욕은 포기하고 근처 산행만 즐기다 왔다고 그는 전했다.
여행지를 다니다 보면 이런 반갑지 않은 한글 안내판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한인들이 조개 잡으러 많이 가는 피스모 비치도 한 예. 함부로 조개를 잡지 말라는 한글 경고 팻말이 있다.
한인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한글 안내서가 비치된 것까지는 고마운 일이지만, 그 많은 언어들 중 유독 한글로만 조개 남획 경고문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한글 경고문은 한인들의 원인 제공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유원지들 중에서도 한글 안내문, 경고문 많기로는 온천장이 단연 으뜸이다. 내용은 주로 옷을 모두 벗지 말라, 수영복을 착용하고 들어가라, 때를 밀지 말라, 침을 뱉지 말라 등. 한국의 대중 목욕탕에서 하던 그대로 온천장에서 하는 한인들이 꽤 있다는 반증이 된다.
비슷한 일은 헬스클럽에서도 일어난다. LA의 한 미국인 경영 헬스클럽은 한인 회원이 많기로 유명한데, 그곳에 가면 한국 목욕탕으로 착각할 광경들이 종종 벌어진다.
50대 한인여성 회원의 말을 들어보면 드라이 사우나, 스팀 사우나에 벌거벗고 앉아 있거나, 조용한 사우나 실에 모여 앉아 큰 소리로 잡담을 하고, 샤워 후 벗은 몸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을 배회하는 한인 여성들 때문에
낯뜨거운 일이 거의 매일 일어난다. 한글 경고문이 여기 저기 붙어있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사회에 한글이 이런 용도로 첫 선을 보인다면 문제가 있다. 공공장소에서, 공중도덕과 관련해서는 한글이 되도록 눈에 띄지 말아야 하겠다.
권정희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