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잘 한다. 가뜩이나 거짓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준 철학자가 있다. 서양 철학의 기초를 놓은 인물로 평가받는 플라톤이다.
그는 ‘국가론’에서 정치 지도자는 국가를 올바른 길로 이끌고 가기 위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말을 듣게 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하면 호랑이가 물어간다고 거짓말을 하듯 지도자도 우매한 백성들을 계도하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해도 좋다며 이를 ‘고귀한 거짓말’(noble lie)이라고 불렀다.
현자들의 다른 가르침에는 귀를 꼭 막고 있는 한국 정치인들도 이 말만큼은 금과옥조처럼 따르고 있다. 한 푼도 받지 않았다며 펄펄 뛰다가 막상 꼬리가 잡히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랬다며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상례가 되어가고 있다.
가주 주지사에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던 선거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리려 하고 있다. 그는 가주민의 가장 큰 불만거리였던 자동차 등록세 인상 철회를 약속하면서 그렇게 하더라도 시나 카운티 정부에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막상 주지사가 되자 돈 문제는 주 의회에 가서 알아 보라고 딴소리를 하고 있다.
제임스 한 LA 시장은 불과 2주전까지 나에게 개인적 약속까지 해 놓고 이럴 수 있느냐고 분노를 터뜨렸으며 제브 야로슬라브스키 LA 카운티 수퍼바이저는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카운티 정부가 거둬 주에 주는 170억 달러 상당의 재산세 이전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돈을 놓고 주와 지방 정부 간 한판 싸움이 벌어지는 사태가 오지 말란 법이 없게 생겼다.
또 슈워제네거는 유세 기간 중 애프터 스쿨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의 지지를 천명하면서 교육 예산을 깎는 일은 내가 살아 있는 한 없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주 헌법을 고쳐서라도 교육 예산 삭감을 추진하겠다고 나서 교육자들을 경악시키고 있다.
가주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슈워제네거 취임 후 행적을 보면 예산 삭감 대상을 의료 교육 등 사회 복지나 치안 소방 등 가장 필요한 서비스로 잡고 있다. 거기다 여느 정치인과 다름없는 구태의연한 말 바꾸기는 참신한 정치 신인의 면모를 기대했던 많은 지지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그가 남은 3년의 임기를 어떻게 꾸려갈 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지난 한 달간의 성적표는 D학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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