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균희 (UCLA 정신과 교수)
시험문제지 유출에 의한 부정행위로 입학한 학생이 발각되면, 합격이 취소 되는 불상사를 맞는다. 당사자의 불만이 “나만 아니라 모두들 했는데요”일 수가 있다.
그리고 “나보다 더 많이 부정행위를 한 아이들도 있는데…”이다. 부정입학에 대한 처벌의 조건에는 부정행위가 나중에라도 발각이 되어야 하고, 또 부정행위를 통해서 입학을 한 학생이어야만 벌을 줄 수가 있다.
세상은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라서 부정행위를 했더라도 발각이 되지 않거나 아무리 큰 부정을 저질렀더라도,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다. 고작해야, 그 학생을 다음해 재 응시 자격을 박탈시키는 수는 있겠지만 기왕에 불합격한 것을 무효해서 합격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부정행위에 대한 벌은 부정행위로 입학한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조사과정에서 문제를 유출시킨 인쇄소 직원, 돈을 주고 문제지를 사온 브로커, 정답을 작성한 가정교사, 돈을 준 부모, 모두가 법적인 처벌을 받지만 끝내는 합격 취소가 당연한 결과이다. “부정행위를 한 학생이 많은데, 왜 나만 벌을 받느냐?”는 질문에서는 바로 “네가 그 합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부정행위 조사에 두려운 사람은 부정 합격한 학생들 이다.
모국서는 불법 선거자금 이야기로 온통 들끓고 있는데, 부정입학과 비슷한 논리가 적용된다면 그 초점은 낙선한 사람에게보다는 당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선거 때면 막대한 선거자금이 운용됐고, 이 자금은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시절에 돈 꽤나 만지는 사람들에게서 갹출해 온 것이었다.
건국이래 어느 대통령도 선거자금과 정치자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리라. 단지 다른 점은 아무도 이 불법선거 자금이란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않았다. 자신의 약점도 가리고 낙선한 정적의 약점도 들추지 않는 그런 묵계가 있었으리라.
판도라가 세상에 올 때 가져온 판도라 상자를 신들은 열지 말 것을 권했으나, 판도라는 궁금증의 노예가 되어서 열고야 말았다. 그리곤 놀라서 빨리 닫아버리는 바람에, 온갖 악은 재빨리 다 세상에 나오고 말았지만, 정작 뒤따라 마지막에 나올 희망은 그대로 갇히고 말았다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 때는 각오가 필요하다. 상자 뚜껑을 끝까지 열어서 마지막으로 나올 희망도 나오게 하는 일이다.
불법 선거자금이란 판도라의 상자 속에 아직도 갇혀 있는 희망은 무엇일까? 불법 선거자금을 쓰면 그 당선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이다. 나아가서는 불법으로 획득한 것은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국민들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다는 것이다. 당선 무효가 되는 법의 심판에서부터, 국민에게 직접 사죄하는 길인 자진사퇴, 혹은 국민의 대표들이 국회에서 책임을 추궁 당하는 탄핵이 있다. “나보다 열 배나 더 불법자금을 많이 쓴 사람에게는 왜 책임을 묻지 않는가?”는 질문의 답은 바로 “그는 낙선했기 때문이다.” 즉 낙선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셈이다.
불법선거 자금에 관한 한 다소를 막론하고, 불법자금을 성공적으로 효율적으로 써서 당선한 사람에게 책임 추궁을 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이다. 불법자금을 쓰고도 낙선한 사람에게는 낙선무효를 할 수 없지만 당선자에게는 당선 무효로 심판함이 당연하다.
적당한 선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닫을 심산인지, 아니면 끝까지 열어서 희망도 세상에 나오게 할 것인지는 지금이 물어볼 만한 때이다.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한 결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