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열/소설가
지난 한해 한국 신문을 들여다보면서 가끔 내가 좀 이상하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전역에 퍼져 있는 연예인 누드 열풍이나 또는 휴대전화 누드 서비스니 뭐니 하는 기사들이 매일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에 미국에 온 내게는 이런 것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한국사회가 잘못되어 가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오래 전에 이민 온 대부분의 이민자가 그렇게 하듯이, 나도 아직까지 20여년 전의 한국정서를 마음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민 올 때 순간에서 마음속의 세월은 그대로 정체된 채로 현실 속 세월만 흐른 것이다. 그러니 나 같은 이민자는 아직도 20여년 전의 한국의 관습과 그 시절만을 머리 속에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때는 누드는커녕 비키니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니, 참으로 한국의 정서가 변하기는 무척이나 변한 모양이다.
대체로 누드는 예술적 대상과 음란적 대상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누드의 예술적 승화는 처음 그리스 고전시대에 남성의 누드로 시작되었다. 우리가 지금 자주 접하는 여성의 누드는 그보다 후인 헬레니즘 시대에 완성되니, 그리스 로마 신화를 근간으로 시작된 여신의 조각상에서 그 원천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아직 누드가 회화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본격적인 누드화가 시작된 것은 아무래도 르네상스로 봐야 할 것이다. 암흑기라고 불렸던 중세시대에는 헤브라이즘을 바탕으로 생활에서의 금욕을 조장했기에, 누드에 대한 관용이 지켜지기에는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나 이런 강압적 분위기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은 르네상스 시대에는 여체의 아름다움, 특히 여성적인 곡선에 대한 미의 추구가 뚜렷하게 미술작품에 등장하게 된다. 실존에 대한 회의와 자아의 재발견, 그리고 탐미라는 단어들로 치장될 수 있는 누드에 대한 갈망은 여러 작가들에게서 광범위하게 나타났고, 그것이 시대의 조류에 편승해서 감동적인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었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육체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정신적 또는 영적 미를 추구했던 동양 쪽에서는 전혀 누드화가 발견될 수 없었다. 간혹 발견되는 것은 색욕이 넘쳐나는 춘화들뿐이다. 그러니 육체적 아름다움의 추구란, 동양에서는 최소한 최근세까지만 해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아름다운 용모의 추구라는 사회현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회화나 예술작품으로 표현되는 예는 찾아보기 힘드니, 누드란 동양 쪽의 문화와는 그리 밀접한 관계는 없었던 것 같다.
요즘 한국에서 불고 있는 누드 열풍은 이런 육체적 미의 추구라는 예술적인 발상보다는 그로 인해 얻어들일 수 있는 반대 급부인 금전적 이득 때문이란 사실은 나만이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적 문란 풍조와 한탕의식이 이 누드 열풍에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예술적 대상으로서의 누드란 예술적 감동이 있고, 그 안에 포함된 작가의 분명한 의도인 사의(寫意)가 예술적으로 승화되어야지 된다. 지금 누드를 찍는 연예인들이 모두 자신의 누드는 예술이라고 외쳐대지만 그것은 감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때에만 예술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는 방법 중에서 여럿이 볼 때 감동이 오면 예술이고 얼굴이 뜨거워 오면 외설이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보티첼리의 그림과 H양의 누드사진을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다면 둘 다 예술품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은 예술이 아니리라. 아무래도 우리는 예술과 외설이라는 두 구분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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