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었던 지난 21일 아침 한인 운 내 아가페 선교교회의 한 소예배실.
50여명의 교인들이 모여 밴드의 반주에 맞춰 박수를 치며 가스펠 송을 부르고 있었다.
대부분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한국어가 아닌 러시아어였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 났다. 바로 ‘고려인’(카레이스키)들이었다.
한인들의 귀에도 익숙한 ‘카레이스키’란 단어는 한국사에서 고난의 상징이었다.
연해주를 중심으로 구 소련지역에서 생활하다 1930년대 스탈린 정권의 의해 척박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던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려 경제기반을 조성했고 뜨거운 교육열로 주류사회에 우뚝 섰다. 그러나 하늘은 그들을 마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각 지역마다 민족주의가 일어서고 회교권으로의 회귀가 본격화되면서 이들은 또다시 이방인이 됐다.
일부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러시아로 이주했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이들은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 가운데 극소수가 새로운 도전을 찾기 시작했고 이날 만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LA에 살고 있는 고려인 가운데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젊은 사람들은 이미 러시아 문화 속에서 자란 탓에 한국문화가 오히려 생소할 정도다. 때문에 일부는 러시안 커뮤니티 안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직업 역시 러시아 출신 유대인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같은 피가 흐르는 한인사회 속에 자신들이 포함되기를, 또 이방인이 아닌 동족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도 엄연한 한국인의 피를 가진 동포들입니다. 먼저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린 한인사회가 이끌어 주면 더욱 큰 힘이 될 것입니다라는 고려인 2세 엘사 최(58·여)씨가 한국어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건물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고 있는 고려인 4세 사라(8)양. 학교에서는 영어, 집에서는 러시아어, 그리고 교회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라가 어느 순간 자신이 ‘소수계 속의 소수계’임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한인사회가 이들을 끌어안고 중요한 일원임을 확인시켜주도록 해야 한다.
황성락<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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