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철<샌프란시스코 주립대 영상학과 교수>
이미 디지털 기술은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많은 분들이 기존의 홈 비디오 카메라를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로 새로 장만 하셨을 것이고 4000불 이상 가는 디지털 텔레비젼을 구입해야 하는 지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과 이미 사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무엇 보다도 디지털 카메라와 함께 DVD의 보급은 CD가 기존의 LP 음반을 완전히 사장시킨 이후로 가장 확실하게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각인 시켜 주었다. 거리로 나서 보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셀룰라 폰으로 무장되어 소위 모바일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전화는 단순한 전화가 더 이상 아니다. 뉴스도 보고 영화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사회적 매체 (medium)가 되고 있다.
많은 젊은 이들은 MP3 플레이어를 통해서 음악을 듣는다. 인터넷에서 음악을 다운 받아서 서로 공유하고 모바일 폰으로 주고 받기도 한다. 은행 ATM단말기에서도 광고 영화가 나오고 가스 스테이션의 단말기에서 디스커버리 채널이 나오기도 한다. 이젠 이메일도 영상으로 보내기 시작했고 소위 말하는 공공 스크린 (Public Screen)이 공항 터미널과 길거리 광고판에 범람한다.
디지털 기술은 이제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사회적 문화적 흐름이 되어 버렸고 범람하는 영상 시대에 디지털이 가져 온 수많은 변화들의 의미는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인류에게 중요한 화두를 제공한다. 필자는 본 지면을 통해 조금이나마 동포 여러분들께서 궁금해 하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드리고 디지털 기술이 영상 분야 전반에 끼친 영향 그리고 대중 문화적 의미들을 함께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I. 디지털 방송의 기술적 측면
왜 디지털 영상으로 가는가?
요즘 동포 여러분께서 쇼핑 몰에 가거나 집에 날아 온 광고 전단지를 보면서 항상 접하는 질문 중에 하나가 지금 디지털 텔레비젼을 구입해야 하는가 일 것이다. 이미 구입하신 분 들도 많지만 아직은 대다수의 소비자가 망설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비싼 가격 때문에 주저하고 계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도대체 무엇이 불편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고가의 텔레비젼을 새로 구입해야 하는지에 대해 불만도 많다.
TV시청을 하다 보면 많은 프로그램들이 아주 자랑스럽게 디지털 서라운드 사운드를 High Definition Television (HDTV)으로 제공한다고 프로그램 서두에 꼭 밝힌다. 아직 아날로그인 기존의 텔레비젼으로 보시는 분들은 자연스럽게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든다. 용기를 내서 텔레비젼 판매상에 가보면 디지털 TV가 진열이 되어 있기는 한데 HDTV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고 써있어서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아니 그러면 HDTV는 뭐고 디지털 TV는 무엇인가? 같은 TV인데 무엇이 다른가? 소비자들이 갑자기 이러한 질문들에 접하게 된 것은 지난 1997년 정부의 디지털 방송 정책에 대한 발표 이후이다.
방송 및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관한 정책을 담당하는 연방 통신 위원회 (Federal Communication Committee, FCC)는 지상파 방송국들에게 2006년까지 모든 방송을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하고 디지털 시그널로 방송하도록 규정했고 일반 텔레비젼 수상기 제조업자들에게는 디지털 해독기를 2007년 까지 모든 TV에 장착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현재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한 미국 전역의 주요 30대 도시 지역들에 있는 방송국들은 1998년 이후로 디지털 방송 능력을 갖추었다. 물론 아직은 완벽한 디지털 체제는 아니다. 왜냐면 방송 제작 단계부터 시그널 수신까지 모든 단계가 디지털로 바뀌었을 때 완벽한 디지털 방송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의 디지털 방송 체제로의 관심은 한국이나 일본등 다른 나라에 비해 늦게 시작 되었다. 일본의 경우, 디지털 방송의 일종인 고화질 텔레비젼 (HDTV) 방송을 이미 기존의 아날로그 시그널을 이용해 방송해 왔다. 후발 주자로서 미국은 아예 디지털 방송 시그널과 고화질 텔레비젼을 함께 도입하여 2007년 부터는 완전한 고화질 디지털 TV시대를 열려고 하고 있다.
디지털 텔레비젼이란 무엇인가?
디지털 텔레비젼은 1과 0으로 구성된 디지털 시그널을 받아들이고 이 숫자의 행렬을 화면상에 디코드 (decode)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수상기를 지칭한다. 따라서 기존의 아날로그 송출방식과는 다르게 날씨나 수신 상태에 따른 화면이 흐려지거나 시그날이 약해지는 등의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시그날이 접속이 되는 한 선명하고 왜곡되지 않은 화면을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고화질 텔레비젼 (HDTV)는 단지 디지털 텔레비젼의 한 종류이다. 일본식의 고화질 텔레비젼은 아날로그 시그널을 이용해서 고화질 영상을 방송하는 방식이고 2003년 12월 부터 일본도 디지털 시그널로 전환을 시작했다. 화면의 크기가 더 커지고 화질이 선명해진다는 개념에서 고화질 방송이고 송출되는 방식에 있어서 디지털인지가 구분이 되는 것이다. 디지털 송출 방식이 가져 올 이득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에 우선 기존의 아날로그 텔레비젼 (NTSC방식) 과 디지털 영상의 차이점을 보다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 텔레비젼 화면 상에 보이는 이미지 (image)에 대한 구성 요소를 먼저 알아 보자.
여러분이 보시는 텔레비젼 화면상의 이미지는 사실상 픽셀 (Pixels, PICture + ELements)이라는 직사각형 모양의 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개 벽돌들이 하나씩 모여서 큰 집을 건축할 수 있듯이 픽셀들은 벽돌과 같은 역할을 하여 전체 이미지를 구성한다. 일단 집이 완성되면 사람들은 집을 전체로서 볼 뿐이지 일개 벽돌들은 우리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처럼 텔레비젼 시청을 할때 이 조그마한 픽셀들은 보이지 않는다. 굳이 텔레비젼 화면 표면으로 여러분의 눈을 가까이 대고 보면 빨간색, 녹색 그리고 파랑색으로 구성된 각각의 픽셀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세가지 색깔들이 수 만가지 조합을 이루면서 다양한 이미지 색깔들을 구성해 사람들의 눈을 속이면서 1천 6백 80만개의 색깔 조합을 제공해준다.
고화질 텔레비젼 (HDTV)은 기존의 텔레비젼에서 한개의 픽셀이 차지하는 공간에 네 개 반의 정사각형의 모양의 픽셀들이 들어갈 정도로 작게 제공되어 보다 정밀한 화상도를 제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4배 이상의 정밀도가 가능해진 것이다. 픽셀의 크기 뿐만 아니라 숫자도 늘어난다. 기존의 TV 수상기는 525개의 수평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각 선 상에 있는 720개의 픽셀들이 스캔이 되면서 이미지가 나타난다. 인터레이싱 (interlacing)이라는 과정을 통해 한 개의 이미지 프레임을 스캔하는 데에 1/30 초가 소요된다. 따라서 1초에 30개의 프레임으로 구성된 이미지를 우리는 보게 되는 것이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최상의 해상도를 보이는 텔레비젼 셋트는 720 픽셀들이 486 라인들에 걸쳐있는 720 X 486의 해상도를 제공할 수 있고 보통 일반 텔레비젼은 512 X 480 정도의 해상도를 소화한다. 요즘 우리들이 매일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화면의 해상도가 최하 800 X 600 해상도 임을 감안하면 현재의 아날로그 텔레비젼이 얼마나 낮은 해상도 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텔레비젼 화면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눈이 이토록 낮은 해상도를 감지해 내지 못 할 뿐인 것이다.
고화질 텔레비젼은 기존의 텔레비젼 보다 6배 이상의 해상도를 제공할 수 있다. 가능한 최고의 해상도가 1920 X 1080 으로서 총 2,073,600 픽셀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자세하고 선명한 화면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화질 화면을 제공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화면 자체도 보다 더 넓어진다.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일반 영화관에서 즐기는 영화 이미지의 화면 비율인 16 X 9 을 집에서도 고화질 텔레비젼은 제공한다. 아마도 왜 화면이 옆으로 길어지는 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이 있으실 듯 하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두 눈으로 접하는 시안을 생각해 보면 의문 점이 사라질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수평적으로 넓게 볼 수 있는 생리적 환경하에서 자연을 관찰한다. 수직선상에 있는 이미지를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만 시각적 정보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자연적이고 편안한 시청을 위해서 와이드 스크린으로 개발이 된 것이다.
화면의 크기도 커지고 옆으로 넓어짐으로써 제작자들에게는 보다 많은 이미지 정보를 넣을 수 있고 기존에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적인 느낌도 더 해진다. 기존의 텔레비젼에서 기피하던 우스개 소리로 하는 큰 바위 얼굴들이 작게 보여지는 현상이 나올 수 도 있겠다.
고화질 영상이 제공할 수 있는 상기와 같은 잇점들은 현재의 아날로그 방송 시그널을 이용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데 왜 굳이 디지털 방송으로 가야 할까요? 첫째 이유는 많은 데이타 정보를 한 시그널에 동시에 압축해서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연방 통신 위원회에서 방송국들에게 부여한 시그널은 현재의 아나로그 주파수와 한 개의 디지털 채널이다. 기존의 아나로그 시그널은 한개의 채널 만이 방송될 수 있지만 디지털 시그널은 여러개의 채널을 동시에 방송할 수 있는 다중 방송 (Multi-channel casting)이 가능하다.
각 방송국은 디지털 채널 당 19.39 메가바이트의 정보를 1초에 보낼 수 있는데 이 정보양을 나누어서 4개의 하부 채널들 (sub-channels)로 나눠서 각 채널이 초당 4.85 메가 바이트를 방송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디지털 텔레비젼 채널이 20번이라고 가정하면 방송국에서는 20.1, 20.2, 20.3 등의 하부 채널을 만들어 다른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동시에 방송이 가능하고 시청자는 보다 많은 선택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제한된 시그널이 감당할 수 있는 주파수 한도내에서 많은 정보를 전송하기 위해서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압축 (compression) 기능이 필요한 것이다.
고화질 방송을 위해서는 프레임 당 총 2,073,600 픽셀 (1920 X 1080)의 해상도를 전송해야 하는 데 압축 기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컴퓨터에서 쓰이는 디지털 압축 방법과 같은 MPEG-2 방식으로 방송 프로그램 제작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초당 인코드하고 주어진 주파수 허용 범위에서 어느 정도의 해상도로 방송을 할 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움직임이 많은 스포츠 중계와 같은 프로그램은 고화질을 제공하기 위해서 많은 정보를 초당 담아야 하기 때문에 전체 용량인 초당 19.39 메가 바이트를 모두 써야 하지만 뉴스 프로그램과 같이 움직임이 적은 방송은 약간 낮은 해상도를 선택함으로써 나머지 잉여 공간을 다른 하부 채널 프로그램 방송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시그널의 특성은 방송국이 3개의 다른 해상도 포멧 (704 X 480, 1280 X 720, 1920 X 1080) 을 통해 방송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하고 프로그램 당 어떤 해상도로 갈지를 차별화 시켜 준다. 현재의 예상으로는 방송국들이 주로 낮 방송 시간에는 일반적인 해상도를 가진 여러 프로그램들을 동시에 방송하고 저녁 시간 프라임 타임 시간대에는 고화질 방송 프로그램을 제공할 듯 하다. 무엇 보다도 디지털 시그널을 사용함 으로써 웹 페이지등의 데이타를 고화질 화면과 5.1 써라운드 사운드 정보와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우리들 안방 문화에 획기적인 변화를가져올 것이다. 보다 흥미로운 변화는 기존의 수동적 텔레비젼 시청에서 능동적인 시청으로의 변화이다. 데이타를 전송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시청자가 능동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상호 작용 (interactivity)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텔레비젼을 시청하다가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자 웹 페이지로 직접 들어갈 수 도 있고 방송국에서 제공하는 데이타 서비스를 십분 활용할 수 도 있겠다. 단순히 텔레비젼을 통해서 피자를 주문할 수 있다는 개념을 뛰어 넘어 시청자끼리의 상호 교류 및 제작자와의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게 하는 등 아직 검증되지 않은 여러가지 새로운 가능성들이 펼쳐질 것이다. 물론 일반 시청자가 이러한 능동성을 과연 얼마나 원할 지는 미지수이다.
고화질 디지털 TV를 언제 사야 합니까?
정부에서도 2006년으로 방송인들에게 디지털 방송에 대한 시한을 주었듯이 현재는 아직 모든 분야가 시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 테크널러지가 역사적으로 그래 왔듯이 초기 도입 단계에 있는 뉴 미디어는 항상 비싼 댓가를 소비자에게 요구한다. 지금의 터무니 없는 가격은 2006년과 2007년에 가면 엄청나게 인하될 것이다. 정부나 제조업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가 성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바로 텔레비젼 모니터의 대중화 이기 때문이다. 대중화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 일반 텔레비젼 수준의 가격으로 저렴하게 제공 되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길어야 3년 안에는 고화질 디지털 텔레비젼의 가격은 1000불 이하로 떨어질 것은 자명하다. 극소수의 소비자들을 위한 현재의 소규모 생산에서 대량 생산 체제가 이루어지면서5년 정도 후에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고화질 TV를 장만하실 수 있을 것이다.
1940년대에 지금 현재의 아날로그 텔레비젼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1954년 정도 까지는 텔레비젼 자체가 뉴 미디어로서 아주 부유한 일부 계층만이 즐기는 비싼 오락물이었다. 주로 뉴욕과 보스톤 등의 도시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주종을 이루었고 일반 소비자들은 텔레비젼을 산다는 것은 몇 달치 월급을 모아서 부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방송 네트워크의 전국망이 1955년에 구축이 되면서 소위 전국 방송이 가능해 지면서 TV모니터의 가격은 저렴해지고 텔레비젼이 우리들 거실에 필수품인 가전제품의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가까운 예로 DVD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에 거의 700불까지 하던 DVD 플레이어가 이제는 100불 내외로 거래되고 있다. 대답은 간단하다. 완전히 방송 제작 단계에서 부터 송출까지 디지털로 전환될 때 까지 기다리셨다가 고화질 텔레비젼을 구입하시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다. 더욱 싼 가격에 더욱 좋은 품질의 제품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 디지털 텔레비젼을 구입하시려고 한다면 고화질 텔레비젼과의 호환성을 고려하셔야 합니다. 왜냐면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디지털 텔레비젼은 디지털 시그널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지 고화질의 해상도를 디스플레이 한다는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입하시려는 디지털 텔레비젼이 표준 해상도 포멧 (standard definition format) 으로 제조 되어 있다면 고화질 텔레비젼이 제공하는1920 X 1080 픽셀의 해상도를 즐길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지금 고가의 디지털 텔레비젼 세트를 구입하시려 한다면 이 점을 자세히 살펴 본 뒤에 구입을 하셔야 후회하지 않는 결정이 될 것이다.
II. 디지털 기술과 영상 제작 문화
영상계에서 종사하는 전문 제작인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디지털 기술은 사실 전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고 할 수 도 있고 획기적인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도 있다. 기존의 매체 기술과 비교할 때 저장의 측면에서 보면 달라진 게 전혀 없다. 다만 더 많은 정보가 압축되서 저장되고 좀 더 세밀한 주의를 통해 마무리가 된 다는 점들이 크게 다르겠지만 재생산 (REPRODUCTION)의 목적은1930년대의 영화 필름이나 레코드 녹음을 통한 기계적 재생산의 의미나 현 시대의 컴팩트 디스크(CD)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디지털 기술은 단순한 저장과 재생산의 의미를 뛰어넘어서 새로운 생산 또는 제작 (PRODUCTION)의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 소리 (SOUND)와 영상 (PICTURE) 뿐만 아니라 문자 (TEXT)를 같은 디지털 코드 (BINARY CODE)에 담을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하여 기존의 모든 매체들이 모두 통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러한 상호 통합 (CONVERGENCE) 능력은 사진술 (PHOTOGRAPHY), 책 인쇄, 비디오 편집, 전화, 음반 녹음, 비디오 게임, 위성,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 영화, 그리고 인터넷 등의 서로 다른 매체 사이에서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영상 매체라는 공통 분모를 창출하게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우리들이 흔히 쓰는 멀티 미디어 (MULTIMEDIA)라는 신조어가 탄생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상 제작 현장에 과연 어떠한 변화가 생기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1. 편집 (EDITING). 영화 편집의 기본적 목적은 영화적 내용을 관객에게 혼돈을 안 주면서 분명하게 스토리를 전달해주느냐에 있고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독특한 영상 미학적 문법을 창출함으로써 사진적인 이야기 하기차원을 넘어 정교한 표현 양식의 영화적 드라마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편집 과정을 통해서 일련의 움직이지 않는 스틸 사진 (STILL PHOTOGRAPHY)들이 움직이는 듯한 환상을 만들어 주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각각의 프레임 (FRAME)들이 모여서 일련의 쇼트 (SHOT)를 만들고 일련의 쇼트들이 모여서 영화적 장면 (SCENE)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장면들이 하나의 시퀀스 (SEQUENCE)를 만들게 된다. 결국 이렇게 이루어진 몇 개의 시퀀스들이 전체 영화의 내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편집을 한다는 것은 분절된 프레임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순서를 매겨주고 또한 재조합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느냐의 의미다. 현재의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과정을 컴퓨터를 통해서 비선형적 (NONLINEARITY)적으로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쉽게 말하면 여러분이 기존의 타자기로 편지를 쓸 때와 현재의 컴퓨터 워드 프로세서를 쓰는 차이와 같아서 순서와 상관 없이 편집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다. 영상물을 카메라를 통해서 찍고 저장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없지만 접근하는 방법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소위 말해서 무작위 접근 (RANDOM ACCESS)을 통한 편집이 가능케 된 것이다. 또한 한번 저장된 디지털 코드는 본래의 선명도를 해치지 않고 언제든지 다시 꺼내서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비선형성과 무작위 접근 능력을 가능하게 한 디지털 기술은 근본적인 영화 편집의 개념을 뒤흔들어 놓았다. 왜냐면 전통적인 편집이 각각의 프레임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편집인의 예술적 결정과정을 말한다고 한다면 디지털 편집은 단순한 프레임 배열 구성 차원을 떠나서 프레임 안으로 사람의 손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포리스트 검프 (FOREST GUMP)라는 영화에서주인공인 톰 행크스가 벤치에 앉아 있는 장면에서 새의 깃털이 날아와 그의 신발위에 사뿐히 가라 앉았다가 날아가는 그림은 특수 효과를 통해서 이루어진 디지털 편집의 한 예이다. 디지털 편집은 영화이야기 구성요소를 어떻게 구성 배열하여 이야기를 전개해가냐는 기본적인 편집 문법을 초월하여 일개의 프레임들 내부를 이루고 있는 픽셀들을 조작하여 어떠한 효과를 이룰 수 있느냐의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프레임 사이(BETWEEN)를 다루는 과정에서 프레임 내부 (WITHIN)를 건드리는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한 것이 지금의 디지털 기술이다. 사실 디지털이라는 단어의 어원적 의미를 보면 사람의 손에 의해 행해진 것 또는 숫자의 형태를 가진 데이타의 의미이다. 흥미롭게도 현재의 영상 시대는 기존의 영상 이미지 (VISUAL IMAGE) 내부에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있게 하여 미세한 영상 요소들을 건드려서 자국도 남기게 하고 오래된 영상인 듯한 효과도 만들 수 있게 하고 기존의 그림에 없던 객체들도 끼여 넣을 수 있게 한다. 촬영 현장에서 이미 정해진 그림의 한계에 의존하던 기존의 제작 방식은 어떤 이미지를 촬영한다는 의미였다면 지금은 이미지를 획득 (CAPTURE)하는 의미가 되어 미술가들이 쓰는 캔버스 (CANVAS)의 표면과 같은 역할을 한다. 수 만개의 픽셀 (PIXEL)들을 조작하여 흐릿하게도 하고 부드럽게도 하고 확대 축소도 하는 영상작업을 하기 위한 일개의 표면 (SURFACE)이 된다. 그 결과 1990년대 중반 부터 제작된 대부분의 영화나 텔레비젼 작품들은 디지털 조작이 안 들어간 작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의 손이 프레임 내부를 건드렸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 시대의 모든 영상물은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2. 제작 과정 (PRODUCTION PROCEDURE). 프레임 내부로 조작의 손길이 닿게 한 디지털 기술은 기존의 제작 방법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일반적인 영화 제작 과정은 크게 삼 단계로 나뉠 수 있다. 사전 기획 (PRE-PRODUCTION), 제작 (PRODUCTION), 그리고 후시 작업 (POST-PRODUCTION)으로 나뉘어서 이야기 컨셉을 잡고 대본과 스토리보드 작업을 하고 촬영 스케쥴이 나온뒤 제작 과정에서 모든 촬영이 이뤄지고 후시 작업에서 편집을 하면서 특수 효과등을 가미한다. 이러한 삼단계의 제작과정은 상당히 분명하게 분리된 독립된 과정 들이었지만 위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디지털 조작이 이제는 단순한 후시작업의 수단을 떠나서 작품 내용 자체에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게 되자 기존의 삼단계 제작 방식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단순히 제작 과정에서 나온 실수들을 고치고 이야기 전개 구조를 마무리하는 단계가 아니라 사전 기획 단계에서 부터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영화 포리스트 검프의 깃털 장면을 기획 단계에서 부터 감안하지 않고 찍을 수 도 없는 것이고 이야기 전개 과정의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동포 여러분께서도 즐겨 보셨 던 한국의 다모라는 프로그램에서 보여 준 영상미는 물론 카메라 기법이나 조명등의 힘을 빌어서 이룬 것이지만 디지털 효과를 통한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들과 전체 프로그램에 흐르는 독특한 질감을 통해 이뤄낸 것이다. 후시 작업 기술들 자체가 스토리와 작품 전체의 색깔을 규정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영상 산업 내부에도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북가주는 할리우드와 달리 후시 작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들이 많이 있다. 특히 대표적인 회사가 아이 엘 엠 (INDUSTRIAL LIGHT & MAGIC)이라는 후시작업 및 특수 효과를 전문으로 하는 곳 으로서 흔히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상물들을 다루어 왔다. 90년대 중반 이후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이 증가 되면서 제작사로 변신을 이루었다. 제작사들의 보조적 기능을 하는 성격에서 감독 등 제작진 만 고용하면 기존의 디지털 노 하우를 바탕으로 쉽게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의 결과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 관객도 쉽게 구별할 수 있었던 특수 효과는 이제 구별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발전했고 영화 내용 자체에 너무나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3. 영상 미술 (PRODUCTION DESIGN). 흔히 여러분께서 영화를 보실 때 느끼는 영상미는사진 감독의 시네마토그라피 (CINEMATOGRAPHY) 기술과 아트 디렉터 (ART DIRECTOR)가 만든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적 느낌과 미학적 충격은 전체의 화면에서 주는 것인데 프러덕션 디자이너가 총 책임자이다. 디지털 기술은 기존의 프러덕션 디자이너들에게 컴퓨터 그라픽 예술인들과의 협조를 요구한다. 위에서 설명했 듯이 각각의 픽셀들을 조작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은 영화 배경 그림을 만드는 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디지털 조작의 강조는 전체 작품을 총괄하는 감독과의 유기적 협조를 선택 조건에서 필수 조건으로 변화 시켰다. 특히 고화질 텔레비젼 (HDTV)이 우리들의 안방으로 입성하게 되면서 전통적으로 무시되어 왔던 텔레비젼 영상 화면의 미학적 배경 (BACKGROUND)은 중요한 영화적 구성 요소가 되었다. 일단 와이드화면으로 커져 버린 화면 면적을 채워야 하는 새로운 과제 이상으로 기존 텔레비젼 카메라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 추구할 수 없었던 화면의 정밀성으로 인하여 영화에서나 성취할 수 있었던 정교한 빛과 그림자의 다양한 층을 창의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준다. 고화질 텔레비젼 카메라는 현재 영화 카메라의 빛에 대한 감각도와 거의 대적할 수 있는 정밀도를 자랑하기 때문에 각종 텔레비젼 프로그램의 배경에 신경을 안 쓰게 되면 시청자가 느낄 수 있는 현실감 (REALITY)는 급격히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80년대 이후 등장한 유선 방송과 위성 방송등의 등장으로 펼쳐진 다 채널 시대의 시장 경쟁 구조 속에서 이미 방송 프로그램들은 내용 보다는 무대나 배경 그림에 굉장한 공을 들여 왔다. 여러분이 많이 보시는 게임쇼나 스포츠 프로그램 그리고 뉴스 시사 프로그램등도 무대 자체가 화려해진 지 오래다. 내용을 통한 내실을 기하기 보다는 겉모양이 중요해지는 기이한 현상을 낳고 있는 이런 경향은 고화질 방송시대가 도래함으로써 더욱 가열될 듯하다. 또한 기존의 블루 스크린 (BLUE SCREEN)을 통해서 서로 다른 화면을 겹치게 하던 효과 (CHROMA KEY EFFECT)등 현재의 일기예보등에서 쓰여지던 기법들이 디지털화 됨으로써 소위 말하는 버쳘 세트 (VIRTUAL SET)의 중요성이 커졌다. 배우들이 아무 것도 없는 녹색이나 파랑색으로 가득 찬 텅 빈 스튜디오 안에서 연기를 하고 후에 디지털로 제작된 무대 소도구들 (PROPS)과 배경들을 입힌다. 매트릭스등 거의 모든 영화들 그리고 프라임 타임 텔레비젼 뉴스 프로그램의 대다수의 스튜디오 셋트가 버쳘 세트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조명 디자이너에게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카메라의 특성을 감안하면서 배우들의 움직임과 무대의 위치등을 감안해서 디자인을 하던 전통적인 접근 방식에서 어떻게 하면 디지털 효과로 만들어진 버쳘 세트위에서 현실감 있는 조명을 줄 수 있는가 하는 화두로 바뀜으로써 컴퓨터 기술자와의 밀접한 협조 관계가 중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람이 직접 조명 기계를 스튜디오에서 설치하는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조명 작업 분야에 버쳘 조명 (VIRTUAL LIGHTING)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겼다.
4. 사운드 (SOUND). 디지털 영상 시대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는 안방 극장에도래한 영화적 사운드라고 할 수 있겠다. 기존의 텔레비젼은 사운드의 미학적 측면에서 가장 낙후된 부분이었다. 처음 텔레비젼이 도래했을 당시 텔레비젼은 전통적인 연극 공연의 개념이 무대 디자인 분야에 도입되고 라디오의 소리와 영화의 움직이는 화면이 어울어진 뉴 미디어로서 태동되었다. 특히 라디오 음향 미학이 텔레비젼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현재 여러분이 보시는 미국의 코메디물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웃음 소리 (LAUGHTER TRACK)는 사실 라디오에서 전해 온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사운드와의 차이점이다. 영화가 일정액의 극장표를 구입한 후 에 어두 컴컴한 극장으로 들어가서 2시간 동안 재미와 무관하게 관람을 한 다면 텔레비젼은 우리들의 사적인 집이라는 주거 공간 안으로 들어온 매체이다. 사람들은 집에 들어오면 거의 습관적으로 텔레비젼을 켜 둔다.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신문도 보고 전화 통화도 하고 가족과 대화도 하는 여러 가지 활동 들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제공되는 영상물이 텔레비젼이다. 즉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은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시청하는 관객들을 끊임없이 텔레비젼 수상기로 관심을 끌어야 하는 강박 관념 하에서 사운드가 이용된다. 따라서 거의 빈 공간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설명해주고 흥미위주의 파격적인 소리들이 우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많이 이용된다. 반면에 영화는 이런 강박 관념은 없다. 왜냐면 2시간이라는 시간 동안은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과 어둠 속에서 집중해서 작품을 관람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영화 사운드는 영화 스토리를 살찌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왔고 사운드 자체가 중요한 이야기 요소로서 작용해 왔다. 반면에 텔레비젼 사운드는 집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수단으로 더욱 이용되어 우리들에게 언제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 지를 큐(CUE)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시청 공간이 주는 영향 뿐만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도 있다. 사실 기술적으로 라디오 방송이 FM 스테레오 방송을 개시 할 때 부터 텔레비젼 수상기들도 스테레오 기능이 가능했다. 하지만 텔레비젼 프로그램 제작 단계에서 부터 오디오 측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깨끗하게 소리만 전달되면 된다는 사고 방식이 강했다. 정부 차원에서 줄기차게 방송계와 수상기 제작 업체들에게 텔레비젼 소리를 발전시키라는 권고를 1960년대 중반 부터 해 왔지만 한번도 현실화 시키지 않았다. 텔레비젼 수상기를 판매할 시장이 점점 작아지고 모든가정에 텔레비젼 수상기가 두대 이상씩 있게 된 상황이 되서야 텔레비젼 수상기 업체들의 생존적 관심과 함께 홈 씨어터 (HOME THEATER) 시스템의 등장 그리고 디지털 방송으로의 전환등의 변화된 환경하에서 집에서 텔레비젼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 360도를 감싸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디지털 사운드 공간 (DIGITAL SOUNDSCAPE)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제작자들도 1990년대 중반 부터 제작 현장에서 부터 사운드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서 텔레비젼 프로그램 제작에 사운드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목소리와 대화위주의 텔레비젼 프로그램이 보다 더 주변의 배경 소리들 (발자국, 바람, 새소리, 공간 오디오 등), 음악, 그리고 효과음등에 관심을 쏟게 되고 긍정적으로는 영화 미학에서 소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듯이 텔레비젼 프로그램들도 소리를 이야기적 요소로서 인지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정적인 측면은 이러한 발전된 사운드가 예술적 창의적인 의미로 쓰이기 보다는 각 프로그램의 상품적 가치를 올려주는 수단이나 산만한 시청자들을 수상기 앞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향이다.
III. 뉴미디어와 영상문화
무엇이 이러한 변화들을 가능케 했는가? 물론 위에서 나열한 모든 현상들을 엮어주는 것은 디지털 기술이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모든 문화를 정의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단순한 사고이다. 기술의 혁명적 힘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용하고 문화적 의미를 재창출하는 데 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의 커뮤니케이션 기술 발전과 함께 도래한 영상 시대를 맞이하는 현대인들로서 신 기술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야누스의 얼굴 처럼 두려움의 어두운 그림자도 상존한다. 최초의 현대적 의미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인 기차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공간의 경험을 주었다. 기차는 인간들의 공간적 이해를 완전히 바꿔주었고 기차의 창문 밖으로 보는 장면들은 지금의 영화 장면들 처럼 쇼트들의 연속으로 지나갔다. 지리적 한계로 묶여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시간의 개념을 도입해주었고 광활한 공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신기술이었다. 하지만 이 신기술도 19세기 중반의 지식인들의 글을 읽어보면 아주 혹평을 당한다. 마치 대포로 쏜 총알을 타는 것과 같이 탑승자들에게 여행의 참맛인 풍경과의 하나 됨과 유쾌한 인상 (IMPRESSION)의 소중한 경험들을 앗아감으로써 아름다운 언덕과 어울어진 코 밑으로 스쳐가는 산들 바람의 상큼함을 느끼는 여행의 경험은 사라지고 단지 인간들을 짐짝으로 전락시킨 괴성을 지르는 엔진이라고 묘사가 되었다. 하지만 기차는 인류에게 파노라마같은 풍경을 즐기는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주었고 19세기말의 영화적 경험을 맞이할 훈련을 해주었다. 텔레비젼이 처음 도입되었던 1940년대 에도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는 텔레비젼을 무서워하셨다. 바깥에서 그 분들의 사생활을 바라보는 상자라고 믿는 분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텔레비젼은 우리의 사적인 주거 공간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공공의 삶과 남들의 사생활을 드라마나 뉴스를 통해 볼 수 있게 한 신기술인 것을 암시하는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처음 라디오가 생겼을때도 우리가 남의 대화를 들을 수 있듯이 우리들의 대화도 남이 들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었다. 이렇듯 신기술 특히 영상 미디어가 새로이 도입될 때 마다 우려와 희망이 항상 상존해왔고 현재의 디지털 기술이 가능케 한 여러가지 뉴미디어들 또한 비슷한 논란을 주고 있다. 텔레비젼의 경우 상업 광고주들의 힘으로 몇몇 과학자들의 실험이 대중 매체로 빛을 발하게 되어 중요한 광고 매체로 시작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와 달리 텔레비젼은 기술이 먼저 개발되고 어떤 내용으로 이 신 기술을 채울지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되었던 미디엄이다. 목적이 없이 수단이 먼저 개발된 모순적 시작이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수 많은 뉴미디어들도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 인터넷 방송에는 어떤 내용의 프로그램들이 들어갈 수 있고 성공 가능할까? 셀룰라 폰에 상영할 모바일 드라마등 컨텐츠 개발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지금 전 세계에 있는 컴퓨터 회사나 전화회사등의 하드웨어 회사들과 영상물을 제작해 온 할리우드 스튜디오들과 제작사들로 구성된 소프트 웨어 회사들의 커다란 고민이 바로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신 미디어들을 채울 컨텐츠 개발에 있는 것을 보면서 주객이 전도 되었다는 느낌을 저 버릴 수 없다. 어떤 용도가 필요한 지에 대한 논의 보다는 일단 만들어 놓고 어떤 목적으로 쓸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신 영상시대를 엄청난 조직과 자금의 힘으로 추진하고 있는 세력이 상업주의로 무장한 다국적 회사들이라는 데에 더욱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인터넷은 초기의 희망과 먼 포르노그라피의 천국으로 변했고 새로운 광고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물론 희망적인 측면은 사용하는 사람들이 인터넷등을 통한 새로운 의미 창출이다. 새로운 정치 활동 참여와 사회에서 소외된 각계의 동성연애자들, 여성, 시민 집단, 소수 인종, 저 소득층 등의 목소리가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직한 현상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기술이 일반 소비자들의 매체 참여를 가능 하게 하였고 가격적으로 일반인들이 영상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개인들끼리 사진을 찍어서 공유하기도 하고 집에서 간단한 영화 편집도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기존 매체 회사들의 배급망과 대항하기는 미약하지만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던져주고 있다. 디지털 시대가 열어나가고 있는 영상 혁명이 사람 살기 좋은 훈훈한 세상을 만드는 예술적 수단으로 이용이 될때 우리는 그 희망의 씨앗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상업성 보다는 도덕성과 인간애가 넘쳐나는 영상 문화를 기대하면서 2004년을 맞는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