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학성 <번역작가>
1980년에 노벨 문학상을 탄 밀로스는 “나는 폴란드 작가로서 행복하게 생각 한다. 글 쓸 자료가 너무 많기 때문에” 라고 농담 했다. 포란드의 역사는 우리나라 못지 않게 복잡하다는 뜻이다. 유럽 중부 발틱 해 남안에 있는 폴란드 국토는 평야 지역으로 자연의 장애가 없어 외군의 침입을 많이 받았다. 1733년부터 2년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러시아 상대로 폴란드 계승전을 일으키고 1772년, 93, 95년도에는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3개국이 폴란드를 3차로 분할 하고 멸망 시켰다. 1918년 폴란드는 독립을 회복 했으나 제2차 대전에는 독일군에게 점령 당 했다가 1945년에 독립을 회복 했다.
밀로스는 이런 복잡한 역사적 배경에서1911년에 엔지니어의 아들로 리투에니아Lithuania에서 태어나 일차대전 후에 폴란드로 이사 갔다. 그는 윌노Wilno에서 고등학교, 대학을 다니고 1930년 시집 출간으로 등단 했다. 카톨릭종교인이90%가 넘는 나라에서 자라난 그는 카톨릭 시인이라고도 한다. 젊은 시절에는 “카톨릭 국가에서, 사상적 자유는 니힐리즘 개념으로 이어진다”라는 문장을 쓸 만큼 반종교적 이었으나 나중에는 자기자신의 카톨릭 영향을 인정 하게 된다.
그의 사상적 자유심은 인간의 생존과 “내 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고려 하는데 중심을 두면서 시는 일상 생활과 관련이 깊다고 그는 언급 한다. “인간을 구원 하지 못하는 시는 쓸데 없다”라고 주장하는 그는 아반가드적 문장, 즉 시인 자신의 성격과 개인의 철학을 표현하는 형식을 비판한다. 반면에는 국가주의, 반유태주의, 사상 주입 제도 등, 사상적 자유를 압박 하는 온갖 형식을 배척 했다.
제2차대전 당시 그는 워소Warsaw에서 리지스탕스 운동을 하면서 나치와 투쟁했다. 1945년 독립 후 새로 들어선 공산당 정부는 밀로스의 시집 <오칼레니아 OCALENIA>계기로 인테리층 외교인으로 임명하고 1946년부터 1951년까지 빠리와 워싱턴DC에서 외교관으로 활동 했다.
그는1951년에 고국 폴란드에 돌아가 큰 충격을 받는다. 폴란드는 공산주의가 아닌 스타린식 독재주의로 신음하고 있는 것을 목격 하고 빠리에서 프랑스로 망명 한다. 그는 스타리니즘의 압박을 공개 하는 <갇혀진 머리The Captive Mind, 1953>를 집필 한다. 그는 1960년까지 빠리에서 살면서 <권력의 강탈The Seizure of Power, 1955>, <이싸 밸리The Issa Valley, 1955>, <시에 관한 논문TRAKTAT POETYCKI, 1957>등을 출간, “폴란드 양심의 소리” 역할을 했다. 밀로스가 폴란드를 떠나자 정부는 밀로스의 서적을 불법화 했고 그는 1960년에 버클리Berkeley 대학 강사로 미국에 착륙한 후에도 소련 공산주의는 비인간적이라고 계속 비판 했다.
해방이 가능 하다는 당신의 말씀,
당신의 지도자들은 소크라테스의
지혜를 간직한다는 당신…
아닙니다, 라쟈,
나는 나의 자신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는, 내 꿈에 나타나는 괴물들이
나에게 밝혀주는 깊은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병자인가요
내가 병자라면, 인간은 원래
병약한 존재라는 증언입니다.
밀로스는 버클리에 정착해서 1970년에는 미국 국적을 가지게 된다. 1960년도의 버클리 대학 캠퍼스는 학생 시위로 번잡 했다. 밀로스 교수는 스프라울Sproul 광장에서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마리오 사비오Mario Savio의 열렬한 연설을 듣고 쓴 웃음을 웃었다고 한다. 나치스가 유태인을 몰살한 장면을 목격 하고 절대 주의 스타리니즘을 목격한 밀로스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별 다른 의미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인권 문제에 대한 혁명적인 바람이 불고 있었다고 하지만 밀로스는 아이로닉한 심정으로 쓴 웃음을 씹지 않았는가 싶다.
그가 본 미국은: “화려함과 가난함, 인간적 이면서 비인간적, 봉사적 마음과 개인의 적절 감, 사상에 대한 충성과 위선, 양심의 승리와 괴팍함”이 공존하는 사회다. 그는 이 사회의 다양성, 모순에 감탄한다. 그는 이 사회의 모순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모순도 시 2편으로 표현한다. <’쟌’과 대화Conversation with Jeanne>,<말세기의 시A Poem for the End of the Century>는 삶의 모순을 그린다. 카라비안 해변에서 쓴 <쟌과 대화>는 수 백 년 걸쳐서 올라온 철학, 사상들을 다 부인하는 “쟌, 철학 이야기는 그만 두자. 그 많은 단어, 그 많은 종이, 누가 감당 하겠는가”라고 시작된다. 반면에 <말세기의 시>는 버클리에서 쓴 시로 증오와 분노를 그린다. 우리 사회적 피부 밑에 숨겨진 인간의 잔인함을 무심하게 보면서 기억하기 싫어하는 우리 자세 때문이다. “만 사가 태평하고, ‘죄’나 ‘죄인’ 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중략)이 우주에 순수한 평화가 왔을 때, 나는 이유도 모르게 온갖 철학 책을 펴놓고 심각하게 내 얼굴을 찌그린다.”
그는 버클리에서 있는 동안1978년까지 계속 많은 작품을 남기고 노벨상 수상 전에 폴란드, 크라카오Cracow에 정착한다. 30년 만에 고국에 돌아간 밀로스는 영웅의 환영을 받는다. 밀로스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시인의 망명이란 비교적 새로운 발견이다. 권력자는 언어를 콘트롤 할 수 있다-검열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단어의 의미 자체를 변경 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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