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승만 장로. 열린문 선교회 510.797.9475 odms4j@msn.co)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으로, 그러면서 동과 서, 남과 북으로 갈갈이 찢겨 나가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품고 세계 복음화의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종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더욱 더 세계 지도를 펴놓고 정치와 문화의 경계선, 중심부와 주변부, 세력권과 그 안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이 세계에서 하시고자 하는 대 위임 사명에 충실한 청직이가 될 것이다. 선교는 전략이 없는 선교는 낭비이다. 감상적인 선교는 전혀 효과적이 아니다. 2004년 더 많은 선교의 수확을 위하여 선교지에서 들어 온 소식과 여러 자료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 글은 3차례 연재될 계획으로 있다.
핍박이라는 관점에서
기독교는 60억의 인구 중에서 20억으로 가장 큰 종교이다. 그럼에도 약 2억의 기독교인은 12억의 모슬렘과 8억의 힌두교, 3억 6천만의 불교인으로부터 오늘날 삼각한 핍박(감옥, 연금, 구타등)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이 되고 있다. 약 4억의 인구는 심각하게 인간의 기본권에 제한을 받으며 살고 있다. 이유는 한가지이다.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에 먼저 주님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교회의 70%가 비 서방지역에 있는데 매우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나라에 있다.
Eritrea, Iraq과 Sri Lanka에서는 급속도록 기독교의 인권과 신앙의 자유가 줄어 들고 있으며 Afganistan, Bhutan, China, India, Northern Africa, Nigeria, Somalia, 특히 Gulf지역에서는 신앙의 자유가 점차로 좁아 들고 있다. Bangladesh, Belarus, Indonesia, Pakistan, Turkemenstan에서는 더욱 더 악화되고 있고 북한, Laos, Maldives, Saudi Arabia, Vietnam에 서는 기독교에 대한 관용도가 거의 희박하다. 그러므로 2004년대에는 아마 더 많은 순교자를 낼 가능성이 짙다.
핍박의 유형면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민족이 민족이, 그래서 나라와 나라가 대항하는 일로 이어진다. Kosovo, Bosnia, Sri Lanka, Sudan, Chechnya, Northern Ireland, 근래의 East Timor의 분쟁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나라안의 종족들의 분규가 종교를 등에 엎고 민족주의를 명문화시키고 있다. 종교적 민족주의는 과거 식민주의와 현재의 서구 문화가 주도하는 지구화 현상의 반동이다.
식민지의 잔재를 없애기 위하여 민족주의를 고양시켜 예를 들어 인도이면 힌두교를 , 미얀마, 캄보디아, 스리랑카등은 불교로, 방그라데쉬, 파키스탄, 중앙 아시아의 5개국등은 이슬람을 부활시켜 민족 정체성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중국도 이 범주에 속한다면 인도, 방그라데쉬,파키스탄, 인도네시아는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나라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심각한 핍박의 우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기독교인 증가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정부가 두려워 하는 것은 그런 기독교의 배후에는 범세계적인 종교 조직단체와 연결되어 있어 국가 안보의 위협과 국민 총화의 이데오로기에 불화를 조장한다고 보고 있다.
모슬렘의 증가와 열기를 더해 가는 선교는 기독교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 아랍권에서 모슬렘의 인구 성장은 4.3%임에도 경제 성장은 0.5%에 미친다. 지금의 모슬렘은 매우 젊은 인구로 문화적으로 강한 근본 주의로 양육을 받고 있다. 2004년도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중동지역 재 편성에 따른 서구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에서 제삼세계의 기독교인이 주도하는 선교가 어떻게 진행될지 큰 관심사이다.
교회의 핍박은 2004년의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는 형제 자매이다. 우리는 돌봄을 받고 저들은 핍박속에 두어 무시함을 당한다면 어떻게 우리는 한 형제 자매라 부를 수가 있을까? 핍박받은 기독교인들은 영적 전쟁을 하고 있다. 삶과 죽음이 걸려 있는 전인적인 삶을 포함하고 있는 심각한 싸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적 전쟁에서 기독교의 신비한 무기인 기도로 그들을 지탱케 하며 실질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세계 선교 동향
제1: 공산권 아시아에서의 개방의 증대와 계속되는 통제사이에서의 긴장 편집적인 공산국가
무신론자인 공산주의는 인본주의인 불교를 신봉하는 나라들을 장악했다. 1970년대 공산주의가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데 실패하고 일본을 선두로 하여 아시아의 5개의 용의 나라에서 자본주의가 성공하자 정치적 권위주의와 자신의 전통문화를 고수한다는 원칙아래 자본 주의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자신의 문화를 키워온 민족주의적인 종교를 옹호하기 위하여 정권은 정치적 의도가 없는 기독교의 가정 교회 운동의 성장을 식민/자본주의의 서양과 연계시켜 위협적 존재로 보아 여전히 교회를 편집증적으로 핍박을 가하고 있다. 이 범주에는 주로 중국과 베트남, 라오스 북한 큐바등으로 세계 인구의 1/3를 차지한다.
중국
지하 교회가 핍박받는 이유는 그들이 결코 정부와 당의 이념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기 때문이다. 당보다 예수께 다 충성을 받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배신자로 낙인이 찍힌다. 그래서 지하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은 정치적인 구실을 삼아 잡아 간다. 정부의 핍박의 유형은 삼자 교회가 열세인 지역에서 지하 교회를 강하게 핍박하여 기독교 신자를 삼자 교회로 등록하여 정부의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 두 번째는 선교적인 의욕이 강한 지하 교회 단체를 표적 삼아 핍박의 공격을 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실제적으로 부추기는 민족주의는 한족화 민주주의이다. 30년 동안 갑자기 인구의 약 6%을 기독교인으로 만든 기독교의 선교 활동에 중국 정부로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인구 90%을 차지하나 인구 10% 미만의 소수민족이 영토의 60%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소수민족의 선교 활동에 철처한 감시와 통제를 가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중국 지도자들은 지하교회에 대한 전쟁에서 정부가 이길 수 없음을 알기 시작했고 점차로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당국은 종교가 당보다, 국가보다 더 오래 존속할 것이라는 전제아래 종교와 사회주의가 서로 조화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한가지 주목해야 할 변화의 조짐의 하나는 정부가 종교적인 문제에는 보안국의 공권력으로 즉결해 왔든 이제까지의 방법에서 사법부에서 처리하는 방향으로 고려하고 있다.
David Aikman 는 그의 최근의 저서인 ‘Jesus in Beijing ‘에서 현재의 기독교인의 증가 추세가 계속된다면 20-30년 이내 중국 인구의 20-30%까지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 만약 그렇게 가정하면 중국 정부 내에서 기독교적인 사고가 틀림없이 적용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국 기독교의 위상은 세계적인 중요한 위치에 있게 될 것이며 미국과 더불어 이슬람의 진출을 제지하는 좋은 우방국가가 될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또 하나 중국 선교를 해야만 하는 중대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Back to Jerusalem’라는 선교 운동이다. 이 운동은 약 30년 전에 중국 한 지하 교회에서 부르짖은 예언적인 구호이었다. 약 30명의 신자들이 중국 대륙을 횡단하며 실크로드를 통하여 세계 복음화을위하여 복음을 예루살렘까지 전하자고 우루무치까지 걸어와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그곳에서 죽었다. 열린문 선교회에서는 조그만하게 ‘Back to Jerusalem운동’을 따르기 위하여 그곳에 선교 학교를 짓기 위하여 기도하며 힘을 모아 일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우는 곳이 오직 수령 지도자의 우상화만 강조되는 나라가 되었다. 1953년 종전시의 2천 3백개의 교회의 약 3십만의 성도들이 사라져 버렸고 지금 많은 기독교인이 정치범으로 수감되어 고문을 받고 있다. 기근으로 보이지 않은 출애급으로 탈북자들의 처지를 2003 년도에는 본격적으로 세계 여론화시키는데 성공하여 민간 단체들이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탈북자를 국제 난민으로 인정받은 일이 2004년에 성취될 수 있다면 폐쇄된 북한 선교에 새로운 활로가 열릴 수가 있을 것이다.
Hmong People
라오스 태국, 미얀마, 베트남, 중국 국경 일대에 살고 있는 몽족은 가장 복음에 대하여 열려져 있고 공산당 정권에 비타협적이어서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미국을 도왔고 공산정권에 대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어떤 때는 소규모 게리라 전으로 대항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몽족은 나라의 적으로, 서방 영향력의 통로로 특히 라오스, 베트남에 서 심각한 핍박을 당해 왔다. 아시아의 달팽이라고 불리며 기독교인의 숙청 작업을 하고 있는 라오스는 몽족에 대하여 ‘secret jungle war’을 지상군과 공중 폭격과 더불어 ‘yellow rain(화학 무기)’을 살포했다. 뿐만 아니라 지상군이 마을을 포위하여 식량 공급을 차단하므로 어린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이을굶어 죽었다.
베트남에서는 Montagnard(중부 고원지역의 수수민족의 뜻) 교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기 위하여 공권력으로 신앙 포기서에 강제로 서명을 시키고 있다.
이 몽족의 선교적 위상은 동남 아시아에서 복음을 간직하는 종족으로 증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귀한 선교적인 도구라는 점에 있다. 몽족을 통해 동남 아시아의 복음화의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불로 선교적인 연단을 시키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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