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부시 대통령의 이민 개혁안 발표 모습을 TV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개혁안의 내용과는 별개로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은 그의 스페인어 발음이었다.
연설 초반 주요 내빈들을 소개하며 구사한 부시의 스페인어 발음은 문외한인 기자의 귀에도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다. 멕시코와 접경한 텍사스주 출신으로 히스패닉 친구들이 많은 부시 대통령의 스페인어 실력이 상당하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지만, 굳이 자신의 정확한 스페인어 발음을 과시하는 듯한 태도가 개혁안 발표의 속뜻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코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의 이번 이민 개혁안 발표를 놓고 올해 말 대선에서 수확을 거두기 위해 히스패닉계 표밭 갈아엎기를 노리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분분하다. 공화, 민주 양측에서 협공을 받을 것이 분명한 이민 개혁 문제를 대선의 해 대통령의 첫 주요 정책 발표 주제로 택한 것은 이같은 정치적 공세를 견디는 어려움보다 거기에서 얻는 실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난번 대선에서 플로리다주 재검표 공방속에 결국 대법원 판사들의 결정 덕에 아슬아슬한 표 차로 고어 후보에 이길 수 있었던 부시 대통령의 선거 참모들이 이 문제를 히스패닉 유권자표를 끌어들여 재선의 확실한 성공을 보장하는 마술지팡이의 하나로 여겼음직하다.
또 불법체류 노동자들의 고용을 양성화시켜 저임금 인력 구인에 어려움을 겪는 미국내 고용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월마트와 같은 대기업들이 불법 신분의 청소직원 때문에 이민국으로부터 급습당하거나 시달릴 걱정을 덜어주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민 시스템이 망가져 있다’고 시인하며 불법체류자 문제와 관련한 정책 개혁의 기치를 내건 것 자체가 지니는 정책적 무게와 충격은 대단한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체적 시행에 이르기까지 해결해야 할 세세한 장애들이 너무 많다는 점은 부시의 개혁안이 결국 생색내기용으로 그칠 것이라는 우려를 정당한 것으로 만든다. 벌써부터 이번 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개혁안 발표가 불법체류 신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실제 혜택은 주지 못하고 상처만 덧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더욱이 체류신분 해결이나 영주권 대행을 대가로 이민자들을 등쳐먹는 이민 사기범들이 대통령의 새 이민 정책 발표를 들먹이며 날뛸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김 종 하<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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