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아파트 자리의 새 건물 붕괴된 미도우 아파트 자리에 들어선 새 건물에 입주한 에드윈 노씨는 옛일에 개의지 않는다고 했다. <김영수 기자>
참사현장 현대식 건물 탈바꿈
피해 직접경험 한인들
“당시 전쟁난듯 참혹”
최근엔 부동산값 폭등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가.
1994년1월17일 새벽 리히터 규모 6.7의 강진의 직격탄을 맞았던 노스리지. 파열된 개스관에서 치솟는 불길에 전소된 가옥, 붕괴된 건물, 뒤틀린 아스팔트 도로 위에 넘어진 전신주 등 아수라장이었던 지진 피해 현장은 부동산 가격이 하늘 높은지 모르고 뛰고 있는 근교 도시로 변화해 있었다.
한인 이필순씨와 이씨의 아들 하워드(당시 15세)군 등 10여명이 붕괴되는 건물에 깔려 숨진 리시다 길의 메도우 아파트 자리에는 수영장, 스파, 가든 등이 구비된 초현대식 아파트 건물이 들어섰다.
2개월 새 아파트에 이사왔다는 에드윈 노(23·CSUN경영학)씨. 건물이 붕괴된 자리에 들어선 건물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던 아파트 건물이 붕괴됐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옛일에는 개의치 않아요”
지진 피해를 몸소 경험했던 한인들에게도 지진은 아득한 옛일이었다.
“벌써 10년이나 됐어요?”
노스리지 지진으로 집과 사업체를 잃었던 민병칠(67)씨는 17일이 지진 발생 10주년 째 되는 날이란 기자의 말에 오히려 반문을 했다.
그동안 자녀들 뒷바라지하고 먹고사는 일이 바쁘다보니 지진이 발생한지가 몇 해나 됐는지 일일이 헤아리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민씨는 그날 새벽 느꼈던 공포만은 아직도 생생히 설명할 수 있었다. “새벽에 갑자기 ‘꽝’하는 굉음과 함께 집이 흔들리고 가구가 쓰러지며 유리가 깨져 6·25때처럼 폭탄이 옆에 떨어진 것으로 착각했답니다.”
아비규환의 현장이 다시 기억에 떠오르는지 민씨는 대화를 잠시 중단하고 쓰고있던 안경을 벗어 손에 쥔 채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민씨는 수십만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지만 보험이 없어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때는 오렌지카운티로 이사를 할 작정이었지만 74년부터 살아온 마음의 고향 밸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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