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아 그 빠름과 느림을 알 수 없는 시간인데 마냥 많다고만 할 수도 없다는 것이 어느 순간에 뒤돌아보면 까마득히 멀어져 가는 지난 시간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서 새삼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얼마 전 우리 식구는 샌호제 다운타운에서 공연되고 있는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호두까기인형’을 관람했다. 다 아는 줄거리처럼 성탄절 이브에 소녀 클라라가 호두까기인형을 선물 받고 무척 기뻐하다 그 날 밤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 생쥐들이 습격하여 장난감 병정과 싸움이 일어나고 생쥐의 대군에 장난감 병정이 밀리자 클라라가 생쥐 왕을 내쫓고 갑자기 호두까기인형이 왕자로 변하여 클라라에게 고맙다 인사하며 환상의 나라로 데려간다는 것이다.
장난감 병정이 왕자로 변하고 꿈속의 세계가 펼쳐지는 등 환상적인 내용 덕분에 어른과 아이가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현재 우리 아이들이 발레에 관심이 많고 나 역시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관심이 많다는 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 모두 공연을 보러간 것이다.
공연장 앞에 이르니 클라라와 장난감 병정 분장의 배우가 나와 아이들을 위해 같이 사진을 찍어주어 나중에 집에 돌아온 후에도 아이들은 즉석 사진을 보며 더욱 즐거워했다. 대사가 없는 발레 곡이어서 비록 아이들에게는 조금 지루한 시간이 될 수 있는 공연이었지만 가끔씩 팸플릿을 보면서 배우를 찾아보고 내용을 이해해가며 화려하게 펼쳐지는 각각의 특색 있는 무곡들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넋을 잃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가슴 뿌듯한 감을 느낀 한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지난 여름 이곳에서는 아동극 ‘콩쥐팥쥐‘가 있었다. 여기에 사는 많은 한인들이 아이들과 같이 그 뮤지컬을 보았을 것이다.
이국생활 속에 묻혀 우리 것을 잊어버리기 쉬운 2세들에게 한국적인 것을 알려준다는 점과 오랜 세월동안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린 추억을 떠올리며 향수를 불러일으켜 준다는 점에서 참으로 좋아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았던 그런 작품들이 오늘 이곳에서 많은 외국인들 앞에서 공연이 되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생각하니 아쉬웠던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호두까기인형이다. 언제 우리가 인형을 갖고 호두를 까먹었을까. 오히려 화롯불에 고구마며 밤을 구워 먹으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옛날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오늘 호두까기인형이 놓여있던 벽난로에서 혹시 고구마 익는 냄새가 솔솔 피어 나오지는 않을까.
최재명/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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