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치과의사>
약속을 가장 잘 지키는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말이다. 우연히 뒤적이던 명언집에서 나폴레옹의 말을 읽다보니 중학교 시절 급우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서울의 고층 아파트 숲 속에 야무지게 자리잡고 있던 학교 건물에서부터 이 친구의 아파트까지는 그야말로 엎어지면 배꼽이 닿는 거리였다. 하지만 이 친구는 매일 지각을 했다. 선생님의 매와 조롱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친구는 조회시간 5분 지각이 철칙인 양 규칙적으로 늦었다.
약속시간을 습관적으로 어기는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는 말을 즐겨 쓴다. 나폴레옹 같은 위인까지 들먹일 필요 없이 우리 주변에서 존경받고 성공했다는 사람들만 보아도 그들의 하루는 한 사람이 소화해낼 수 없을 만큼의 빡빡하다.
이민 초기에 두세 개 일자리를 밤낮으로 휴일 없이 뛰어다니며 돈을 벌어야 했던 우리 이민선배들도 그렇고 고국에서 낮엔 구두닦이, 밤에는 야간을 다니며 대학에 수석 입학하는 그 사람들의 하나같은 공통점은 자신의 원하는 목표를 위해서 시간을 쪼개고 쪼갰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만남이나 출근시간도 엄연히 일종의 약속임이 분명한데 바쁘다며 매사에 항상 늦는 사람도 자신이 좋아하는 골프 티타임 시각만큼은 한시간 전부터 미리 나와 부산을 떨며 기다리는 것을 보면 정작 시간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지각은 약속을 한 상대방에게 난 당신과의 약속을 귀찮게 생각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음과 다를 게 없다. 약속시간이나 행사시간에 한시간 가량 늦게 시작하는 일명 코리아 타임이라는 말도 알고 보니 월남, 필리핀 같은 나라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을 일컫는 비슷한 말들이 있다고 들었다.
어깨를 나란히 해 기분 좋은 나라 이름들이 아니지만 우리의 좋지 못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한 미국 땅에 살면서 후진국 민족들과 비교 받는 수모를 멀리 하기 힘들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