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서울의 밤거리가 눈에 띄게 밝아졌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우울하고 답답하기만 한 시민들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기 위해 서울시가 전기료를 아끼지 않고 모든 조명을 다 밝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강변북로나 올림픽 대로에서 한강의 전경을 바라보면 정말 기분이 달라집니다. 확실히 빛은 인간에게 내적 새로움을 안겨 줍니다.
하지만 밤거리의 조명은 집안에 있는 사람에겐 힘을 미치지 못할뿐더러, 날이 밝으면 그 효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24시간 계속하여 우리를 새롭게 해 줄 조명, 빛은 없을까요?
사울이란 청년이 다마스쿠스로 향하다가 빛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의 시각이 낮 12시, 중동의 태양이 온 천하를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사로잡은 빛은 태양의 빛이 아니었습니다. ‘해보다 더 밝은 빛’(행 26:13)이었습니다. 낮 12시 태양의 빛 속에서도 식별할 수 있었던 ‘해보다 더 밝은 빛’은 무슨 빛이었을까요?
“해는 더 이상 낮을 밝히는 빛이 아니며, 달도 더 이상 밤을 밝히는 빛이 아닐 것이다. 오직 주께서 너의 영원한 빛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너의 영광이 되실 것이다. 주께서 몸소 너의 영원한 빛이 되시며, 네가 곡하는 날도 끝이 날 것이므로, 다시는 너의 해가 지지 않으며, 다시는 너의 달이 이지러지지 않을 것이다.”(사 60:19-20, 표준새번역)
그 빛은 진리의 빛, 곧 주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그 빛 속에서 새로운 바울이 되었습니다. 진리의 빛 속에서 그는 진정한 새날, 새해를 날마다 해마다 맞았던 것입니다.
유대 총독 빌라도가 주님을 향해 ‘진리가 무엇이냐’고 심문할 때의 시간도 제 6시, 즉 낮 12시였습니다(요 19:14).
그는 태양의 빛만 보았을 뿐, 자기 앞에 계신 영원하신 주님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주님을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는 수없이 달력을 교체했지만, 자살로 자기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그에겐 모두 헌 날이요 묵은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거리의 조명은 우리의 기분을 잠시 새롭게 해 줄 따름이지만, 진리의 빛 속에선 매일 매해가 새날과 새해가 됩니다. 존재의 새로움은 오직 그 빛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2004년 1월 ‘쿰회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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