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호 목사 <나눔선교회>
수없이 많은 상담을 하다보면, 무슨 이야기를 듣고, 무슨 말을 했는지 조차도 헷갈릴 때가 많다. 인생사는 것이 뭐 그리도 특별할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상담의 내용들도 사실은 거기서 거의 거기이다. 어쩌다 특별한 내용과 환경, 사건을 제하면 말이다. 선교회에 오는 많은 상담인들은 부모와 자녀의 문제로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서로가 이해하지 못한다며, 한쪽에만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하루는 늦게 자녀를 보았는지 겉보기에 한 50대는 족히 넘었을 것 같은 중년의 아저씨와 15세 밖에 되지 않은 남자아이가 상담을 왔다. 아들이 도대체가 아버지가 하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며 ‘너는 지껄여라. 나는 내 일 한다’라는 식으로 자신을 무시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한다.
내가 저 녀석을 어떻게 길렀는데. 나는 밤 청소 나가면서 안 먹고 안 입어도 저 녀석 하고 싶다는 것은 다 해줬어요. 좋은 옷에, 집에… 뭐 하나 부족한 게 있습니까? 우리 어릴 때 어디 그랬어요? 울분에 차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더욱이 아버지가 불호령을 하고 화를 내며 아들을 교육시키려고 하면, 아들은 폴리스에게 신고하겠다며 자신에게 대들고, 한국에서와는 달리 한껏 목소리가 높아진 마누라가 편들고 나서는 통에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쓸어 내리느라, 자신이 이렇게 늙어버렸다며,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아들대로 아버지가 매일매일 자기에게 한 이야기 또 하고, 한 이야기 또 하는데…, 미칠 것 같다고 한다. 어쩌다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들어오는 날은 ‘네가 호강에 겨워서 그렇다. 밥 먹고, 등 따시니까 딴 짓 한다. 네가 이렇게 먹고사는 것이 뉘 덕인 줄 아냐?’하며 도무지 알아듣지는 못하는 이상스러운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아주 돌아버릴 것 같다고 한다. 아버지는 한국말로, 아들은 영어로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했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자니 속이 터질 것 같았던 아버지가 도대체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통 알아듣지를 못하겠으니, 이 녀석이 뭐라 씨부렁거리는지… 통역 좀 해주쇼라며 아들을 데리고 선교회에 오셨던 것이다.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의 언어를 몰라서 통역이 필요하단 말인가?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남북한 삼팔선을 두고 갈라진 것만이 비극인가? 부모 자녀간의 이질문화는 두 번째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해시킬 수 있는 공통된 언어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이민 1세의 부모는 먹고사는데 치여서 제대로 영어 단어 한마디 공부할 틈이 없었다. 악착 같이 미국사회를 헤쳐 나가느라, 심한 고생도 했고, 가끔 뒤돌아 눈물을 흘리며 고국을 그리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겨우 그런 고난을 한 고개 넘어 밥숟가락 들만하니, 미국서 태어난 자녀들이 한국말이 서툴러 부모와 대화를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한인 가정들이, 부모는 한국말도, 영어도 아닌 콩글리시로 답답한 마음과 안타까움으로 You know, You know 하며 자녀에게 애써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으니… 부모의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무시한 채 I don’t know, I don’t know 라고 말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만 것이다. 한 언어를 사용해도 부모, 자녀가 대화하기가 가뜩이나 힘든데, 언어까지도 각각 다른 말로 어떻게 부모와 자녀간에 이해관계를 형성할 수 있겠는가?
부모와 자녀와의 가장 중요한 꼭지점은 바로 대화라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고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현실이 이를 뒷받침해 주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후일을 위해 부모님들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학교 공부 따라가는 것만 걱정해 무조건 영어, 영어만을 강조하지 말고,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철저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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