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병에는 밥이 약이다. 배부른 사람들은 올챙이 시절을 잊고 “사람이 밥 만 먹고사느냐?”는 식의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사람은 밥도 못 먹고는 살수 없다.
인간이 살지 못하고서야 인권 운운할 가치조차도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최소한의 경제수준은 유지해야한다는 이론에 설득력이 있다. 반만년간 지속되던 보릿고개를 해결하고, 경제력 상위권의 국가 중에 하나로 들어설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것은 60대 초에서 70년대 말기까지의 박정희 시절의 공적이다.
한 지도자를 평가하는데는 그 기준을 공(功)을 중심으로 하느냐 혹은 과(過)를 중심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 한국 현대사의 전환기에 살다간 지도자 박정희는 그 의 공을 중심으로 평가받는 것이 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나는 본다.
배고픈 시절이 지나자 서서히 배아픈 시절이 시작되었다. 경제성장이 고속으로 진행될 때에는 당연히 졸부가 생기게 마련이고, 자본 민주주의 제도 속의 자유경쟁시대에는 능력 있고 운 좋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앞서 달리게 마련이다. 능력이란 창조적인 아이디어 개발, 발명, 창업, 성공적인 기업운영, 연구활동 등의 긍정적인 능력은 물론, 한국적인 특수한 사회배경과 상황 때문에 생긴 협잡, 사리사욕, 줄서기와, 사기에 이르기까지의 부정적인 면의 능력도 포함되었다.
물론 조만 간에 이런 부정적인 능력이 성공에 접목되는 부조리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소위 성공과 성취를 이룬 모든 사람을 부정 혹은 협잡에 연루된 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며 ‘상대적 빈곤’ ‘서민들의 박탈감’ 등의 새로운 심리표현 용어가 생겼다. 배아픈 사람들, 소외되고 무시당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믿는 사람과 상대적인 가난을 절감하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들을 선동하기는 쉽다. 기득권자들과 자본가들을 공격하고, 지식인을 멸시하고, 권위와 서열을 파괴하고, 가진 자들을 미워하는 방법이 있다.
IMF 이후부터 선동되기 쉬운 계층이 넓어 졌다. 선동 가능 계층의 폭이 넓어지면 ‘시민혁명’도 사회주의 정권도 가능해진다. 구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도, 홍위병운동도 이런 불만이 쌓인 민중의 힘과 선동의 합작으로 가능했다.
구호는 물론 만민평등주의라는 이상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권위주의, 학벌주위, 재벌, 부의 세습, 서열주의’ 가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선동과 공격심을 키워주기에는 좋은 대상이지만, 실제로 교육, 부, 질서와 서열, 권위 등은 자본민주주의 사회 속의 상대적인 현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거부하고 ‘권위주위, 재벌, 부의 세습, 학벌주의’라는 절대적인 악명을 붙쳐 주고 권위와 부(富), 교육을 파괴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특히 상기한 ‘권위주의 재벌 혹은 학벌’의 암적인 요소도 실제 상존 해온 현실 속에서는 옥석을 구분하지 못하고 함께 매도해 버리기가 쉽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수법으로 삶의 질과 국민들의 수준을 하향 조정하여, 일단은 소외된 자들의 정서에 부합되고, 그 힘으로 자신의 새로운 권력 창출에도 성공하지만, 평준을 통해 얻은 평등한 사회는 종국에는 그 사회 자체가 몰락하게 된다.
일련의 평준화 운동, 즉 고교평준화, 의료평준화 ‘권위평준화’에 이여서 최근에 발표된 ‘대학 평준화’ 계획에 우려를 금 할 수 없다. 다음에는 ‘부의 평준화’를 내 세울 수도 있다. 평준화는 평등주의에 부합하는 것 같고, 인기 정책도 될 수 있지만, 오히려 모두가 평등하게 못살고 또 모두가 평등하게 무식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개혁’이란 이름 하에 구체화되어온 일련의 사태와 더불어 표면화된 ‘대학의 평준화’ 계획안이 주는 의미는 대단하다. 자유경쟁을 중심으로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민주사회냐, 아니면 강요된 평준화를 통한 하향조정의 사회주의를 지향하느냐의 갈림길에선 한국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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