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김치를 두고 한국이 일본과 원조 논쟁을 벌여야 했던 적이 있었다. 한국사람들에게 ‘김치가 한국 음식’이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
하지만 그건 우리 생각이고, 국제 무대로 나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가 먼저 어떻게 소개했느냐에 따라 원조에 혼란이 올 수가 있다. 한국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일본의 기무치가 국제 무대에서 더 알려지다 보니 ‘김치냐 기무치냐’ 라는 논쟁 자체가 설 땅을 얻게 되었다.
다행히 논쟁은 ‘김치’가 원조로 공인을 받고 일단락 났지만 너무 안심하다보면 당연한 내 것의 소유권이 엉뚱한 데로 넘어갈 수가 있다. ‘김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LA의 유명한 식당가인 라시에네가에 최근 야키니쿠 집이 생겼다. ‘야키니쿠’옆에는 ‘일본식 바비큐’라는 설명도 붙었다.
야키니쿠가 무엇인가. 불고기이다. 재일동포들의 대표적 비즈니스 중의 하나가 바로 야키니쿠 식당, 불고기 집이다.
미국과는 비교가 안되게 차별이 극심한 일본 땅에서 우리 동포들이 할 수 있는 생업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재일동포 1세들은 막노동으로 시작, 돈이 모이면 이런 저런 장사를 했는데 소자본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불고기 집이었다.
동포들이 많이 모여 살던 오사카 조선시장 근처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고기를 굽기 시작한 것이 야키니쿠의 원조. 석쇠에 고기를 올려놓고 구우면 어찌나 연기가 심하던지 앞사람 얼굴이 안 보일 정도였다고 나이든 재일 교포들은 회고한다.
‘마늘 냄새 난다’‘야만스럽다’며 한국음식을 쳐다보지도 않던 일본인들이 야키니쿠 집을 찾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 이제는 한국식당에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더 많고 김치, 불고기 뿐 아니라 냉면, 비빔밥, 빈대떡, 낙지볶음 등 한국음식을 일본 사람들이 더 좋아하게 되었다.
몇 년 전 만난 재일동포들은 “일본사람들이 야키니쿠 맛 보고 나면 스키야키 안먹는다. 맛으로 일본을 정복했다”며 흐뭇해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야키니쿠 집이 성업을 하자 90년대부터 일본 대기업들이 체인점 형식으로 업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 기세로 미국 시장까지 파고든다면 ‘불고기’의 앞날이 걱정된다.
한인타운 울타리 안에서 우리끼리 불고기를 즐기는 동안 야키니쿠는 미 주류사회에서 ‘일본 바베큐’로 뿌리를 내릴 수도 있다. 한국 음식문화 보존에 한국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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