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을 다녀왔다. 많이 변했다는 것은 뉴스를 통해서나 다녀 온 사람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나 이민 온지 십 수년, 어느새 오십줄…, 중년에 접어드니 말로만 듣던 한국과 직접 가본 한국에는 차이가 많았다.
우선 친구들이 많이 변해 있었다. 친구들이란 언제나 그립고, 반갑고, 정겹지만 그들의 삶 속에는 지나간 삶의 그림자가 어김없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지금 오십 중반의 나이라면 거의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한국 경제가 고도 성장기를 거치고 있었으므로 요즈음처럼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지도 않았고, 교수 추천서 한 장이면 원하는 기업을 골라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유행어 가운데 하나가 “할 거 없으면 선생이나 하지 뭐-”였다.
그런데 30년쯤 지난 지금, 나를 포함한 친구들의 인생 성적표를 바라보니 처음과 끝이 같은 친구는 한두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부러지고 휘어져 있었다.
한 예로 할게 없어 모교에서 선생이 된 어느 친구는 넥타이 휘날리며 당시에 잘나가던 친구들 틈에서 꽤나 기죽고 마음고생을 하더니 30년쯤 한 직장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에 인생을 바치고 나니 제법 고참 대접을 받아 수년 전 이미 로스앤젤레스 동창회로부터 모교 스승으로 초대되어 다녀가기도 했다.
이번에 만나보니 크게 부자로 살지는 못해도 아들 하나 잘 키우고, 부부 건강하고, 10억대를 웃돈다는 강남의 40여평 아파트에 사니 어떤 성공한 친구보다 행복해 보였고 인생 성적표의 점수가 가장 높은 것으로 보였다.
대기업에서 정상에 올라 직장인으로 성공을 했거나, 전문직에서 유명인의 반열에 올라 명성을 떨치고 있거나, 자기사업을 일구어 엄청난 부를 거머쥔 친구들보다 유독 그 친구가 돋보인 것은, 어느 것 하나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나의 무능함 탓일까.
좀더 솔직히 말해, 한두 친구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너무 커(?)버려서 나의 존재 따위는 염두에도 없다는 듯, 말로는 무척 반가워하면서 실제로는 교묘하게 자신은 옛날과 다른 성공한 사람이란 점을 나타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성공한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성급한 결론일지 모르나 이제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로서는 승패를 가름하기 이르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아 최후의 승자가 진정한 승자이기 때문이다.
20대에서 30대를 거치는 동안 잘나가던 몇몇 친구들은 IMF를 거치면서 쓰러져 친구들 무대에서 뒷전으로 밀려버리기도 하고 초창기에 어려웠던 친구들이 크게 성공한 경우도 많았다. 인생의 승패를 돈의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으로 가늠할 수는 없을진대 축구에서처럼 전반에 다소 실수가 있었더라도 후반에 잘 마무리를 함으로써 역전시킬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인생에는 많은 소중한 가치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는 가정의 화목이 아닌가 싶다. 부부 사이가 나쁘거나, 가족 가운데 건강을 잃은 사람이 있을 경우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지위와 명예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말이다.
1970년에 ‘누구를 위하여 사랑하는가’라는 작품으로 400만부가 넘는 초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일본작가 소노아야꼬는 “인간이란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생의 참 묘미를 깨닫게 된다”며 “인간이란 그 누구도 완전할 수는 없으며 멋 모르고 만용을 떨칠 것인가 아니면 겁쟁이가 되어 용기 없는 사람이란 비난을 들으며 살아갈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이고,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가는 단정지어 말할 수 없지만 만용이 일의 추진과 결과에 효과적인 경우도 있고 겁쟁이가 실패를 예방하여 좋을 수도 있다는 것뿐이다”라고 했다.
중년에는 무엇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인지 되돌아보고, 지금까지의 인생이 남들보다 앞섰다고 해서 교만할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후의 남은 인생 성적표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 할 듯 싶다.
최 종윤/수필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