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판, 아프리카 판, 인도·오스트레일리아 판, 아라비아 판, 필리핀 판, 태평양 판, 북아메리카 판, 나스카 판, 남아메리카 판, 코코스 판, 카리브 판, 남극 판. 지구 땅과 바다 밑에 자리잡고 있는 12개의 거대한 판이다.
대륙이동설, 해저확장설에 이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착한 판구조론은 이들 판에서 그 이론 전개를 시작한다. 이 패러다임은 지각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지구의 진화를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지질학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판과 판이 움직이다 부딪히면 접경지역의 지상에서는 크고 작은 지진을 경험한다. 캘리포니아, 일본, 필리핀 등을 연결하는 태평양 연안에 지진이 빈발하는 것은 태평양 판, 북아메리카 판, 필리핀 판의 움직임 때문이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지진이지만 일 점, 일 획도 되돌릴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지진에 놀란 가슴은 판들이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으면 하지만 생명체가 아닌 지구도 그렇게 변해갈 수밖에 없다. 한반도는 다행히 유라시아 판 동남부 가장자리에서 다소 안쪽으로 들어간 위치에 있다. 척박한 땅에 대한 하늘의 배려인지, 한국인들은 판 움직임으로 인한 지진위협에 코방귀 끼며 살아 왔다.
그런데 한국에서 또 다른 판이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4.15총선 결과의 신선한 대목들이 판구조론의 정치적 설득력을 발한다. 16년만의 첫 여대야소, 초선의원 63% 진출, 40대 이하 의원 43.1%로 급증, 60대 이상 의원 16.4%로 반감, 여성의원 13%로 약진. 정치판이 국민의 변화욕구를 흡수해 요동친 뒤 달라진 오늘이다.
‘43년만의 진보정당 여의도 입성’이란 위업을 달성한 민노당은 판의 요동을 넘어 판갈이의 산증인이다. 민노당 지지자들이 빨간 장갑, 앞치마 차림에 고기 굽는 판을 동원해 “부패정치 판갈이 합시다” 하며 웃음을 자아냈던 퍼포먼스가 현실화했다.
미식가가 아니라도 순대, 곱창, 갈비를 구워 먹다 찌꺼기가 판에 들러붙으면 “판을 갈아주세요” 하고 주문한다. “판을 새로 바꾸는 맛에 구이 집을 즐겨 찾는다”는 사람들도 심심지 않게 있다. 이러한 판갈이 외침이 정치판에도 쩌렁쩌렁 울렸다.
개혁세력을 반대했다고 해서 이들의 용트림에 낙담할 것도, 비아냥거릴 것도 없다. 잘 못하면 4년 뒤 판이 갈릴 것이다. 변화는 생명력의 표출이고 변화에 대한 거부는 삭아 들어가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변화를 즐길 줄 아는 듯하다. 그런데 웬일인지 한인사회에서 변화란 단어는 생경하게만 들린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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