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희/미주문협 이사장
서울에서 돌아와서 열흘이 지났는데도 나는 영 시차를 벗어나지 못하고 병처럼 앓고 있다. 서너 시가 되면 자꾸 침대에 눈이 간다. 냉수도 마셔보고 마당도 거닐어 보아도 오뉴월 소낙비 쏟아지듯 엄습해 오는 잠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이날도 수렁에 빠져든 듯한 깊은 잠 속에서 나는 어렴풋하게 딸아이의 소리를 들었다. “엄마, 전화 받을 수 있으세요?” 잠자던 어눌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같은 교회의 규시인이었다.
“언니, 깍두기를 언니 몫으로 담아놓았는데 오늘 부흥회에 오시면 가져갈께요” “ 바쁜 사람이 언제 깍두기를. 고마워. 부흥회가 몇 시에 있는데?” 하고 솔깃한 마음에 물었다. 7시일거라고 한다. 지금이 4시니까 인제 일어나서 준비하고 가면 되겠다.
내 어렸을 때는 부흥회를 사경회라 했다. 나는 사경회에 이상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한경직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제2 교회가 비좁아 서쪽 켠에 분교회로 제 4 교회를 세웠는데 우리 일가 친인척이 모두 이 교회에 다녔다. 겨울이 긴 고장이라 교회 안에는 스팀장치가 되어있어 클마니(할머니의 사투리)와 나는 좀 일찍 가서 스팀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어머니와 숙모를 기다리곤 했었다.
얼마나 열심히 사경회에 다녔던지 어린 아이의 마음이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목사님 말씀에 차라리 어른이 되기 전에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며 밤새워 기도하였다.
지난해 50년만에 모교에 복학해서 한 학기를 기숙사에서 지나면서 떠나올 때 시끄럽기 시작한 미국의 내 교회 일이 떠올라 근심스러웠다. 캠퍼스에 가을 물이 오르기 시작할 때 나는 대학교회 뜰을 서성이며 내 교회를 생각하였다.
12월 중순, 서울에서 돌아와 맞는 첫 주일에 지정석처럼 앉곤하는 내 자리에서 듬성히 빈자리를 바라보며 나는 설음이 복바쳐 올랐다. 많은 분들이 교회를 떠나셨구나. 분란의 요인은 무엇일까. 깊은 내막을 나는 모른다.
20여년 동안 이 교회를 지켜오신 당회장 목사님이 발표 후 단 한달 만에 젖먹이 애기같이 따르던 교인들을 놓고 서울의 만 명이 넘는 대형교회로 가신 이유가 무엇일까. 은퇴하면 개척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시더니.
내가 좋아한 우리 목사님이 가신 서울의 교회를 설립한 목사를 나는 좀 안다. 그가 Y교회의 부목사로 계실 때 내 동생 셋의 결혼식 주례를 서 주신 분이다. 잘 생긴 외모에 독특한 톤으로 하는 설교가 매력적이었다. 그러던 목사님의 성함이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던 일을 나는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 목사님이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출발하려는 날이었다.
짐 속에서 엄청난 외화가 나왔다고 했다. 이 외화는 미국 등지에서 부흥회를 하고 번 돈이라고 했다. 목사가 부흥회하고 돈을 번다는 말도 옛사람인 나에게는 생소했지만 우리나라에도 좋은 병원이 많은데 외화를 감춰들고 병 고치려고 미국으로 간다는 말은 요사이의 젊은이들은 몰라도 당시의 우리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잘 살아보려고 온 국민이 손에 불을 쥐고 일할 때였다.
커다란 호수에 바람이 불고 돌도 굴러 떨어지는 일도 있을 법한 것이 세상이다. 교회사회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내 교회는 서너 달 사이에 패어진 상처가 아물었다. 적시에 부흥회가 열리는 일도 기뻤다. 7시7분 전에 교회 안에 들어섰다.
악기를 든 젊은이들이 복음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복음성가가 끝나고 목사님은 광고를 하시더니 팔을 들고 축도를 하기 시작했다. 암만 해도 좀 이상했다. 몇 사람이 자리를 뜨고 있었다. 예배 끝머리였다. 부흥회는 5시에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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