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100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한 작은 도시가 있다. 1986년 4월26일 이곳에서 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이 도시는 아마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른다.
그날 원자력발전소에서 한 근무자가 가동중지 터번을 시험했다. 문제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 이로 인해 원자로가 폭발했다.
재앙이 시작된 것이다. 암과 백혈병, 사산 및 기형아 방생을 유발하는 방사능 물질이 10일간 유출되면서 사고지점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도 오염시켰다.
악명 높은 체르노빌 원자로 사고다. 재산상의 피해만 140여 억 달러로 추산됐다. 이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때 누출된 방사능물질이 기류를 타고 이동함으로써 앞으로 수천 내지 수백만 명의 백혈병 및 암 환자 발생이 예상된다는 경고도 나와서다. 그 예언은 그리고 적중했다.
이 사고의 비극성은 핵 폭발 대형 참사라는 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소련 사회, 다시 말해 공산 체제가 빚은 사상 최대의 인재(人災)였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던 것이다.
병적인 비밀주의, 정보관리와 정보조작, 관료주의, 무사안일주의, 인명경시 풍토. 이런 것들이 결합돼 빚어낸 참사였다는 진단이다.
소련 정부는 처음엔 무조건 잡아뗐었다. 원전 폭발을 시인한 게 사건 발생 이틀이 지난 4월 28일. 그때는 이미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방사능이 검출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소련 정부는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가 큰 사고는 아니니 주민들은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며 은폐와 축소에 급급했었다.
소련의 최고 권력자들은 그러나 사고 발생 직후 현장 근처의 친지들에게 비밀리에 긴급 대피를 당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민들에게는 나흘이 지나서야 대피 방송을 했고.
정부가 상황 파악과 대책을 미루는 사이 희생자와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체르노빌 사고가 소련 민주화의 기폭제가 됐다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비밀주의로 인한 정보 결여, 늑장 대책, 의료기술의 후진성과 의약품 부족, 당국의 안전 불감증 등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북한의 용천역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북한당국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이틀 후 현장과 피해상황을 공개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왜 이틀 만인가.
위성 사진에 잡힐 정도의 대형사고다. 김정일의 중국방문 직후, 국경 근처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온갖 유언비어가 나돌았을 것이다. 그러니 숨기고만 있을 수 없지 않았을까.
분명히 비극적인 대 참사다. 용천역 폭발사고는 그러나 북한 판 글라스노스트의 전조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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