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옥.한국 이슬람연구소 소장
“선교는 십자가의 길”. 61년 파키스탄 선교 개척.
1961년 10월 31일 파키스탄 카라치 국제공항에 20대 중반의 여자 대학생 3명이 도착했다.
이화여대 영문과 4학년 재학시절 파키스탄에 선교인력이 부족하다는 내용의 김활란 박사의 설교를 듣고 파키스탄 선교행을 결심한 전재옥 교수(현 이슬람 연구소 소장)가 그 중 한명이었다. 전씨가 한인최초의 파키스탄 선교사가 된 순간이었다.
지난 14일(금) 오전 7시부터 산호세 한인장로교회에서는 ‘한국교회의 대 이슬람 권 선교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전재옥 교수의 특별 선교 간증 집회가 개최되었다.
인터콥 샌프란시스코지부와 한국 이슬람 연구소 주최로 개최된 이번 간증 집회에서 전씨는 이슬람권의 선교현황과 함께 이슬람 문화에 대한 간증을 통해 참석자들에게 이슬람권 선교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정립시켜 주었다.
전씨는 이슬람권 선교에 대해 “한국인의 해외선교현황을 살펴볼 때 대략 1만 명의 선교사가 해외에 파송되어 있다”며 “그 가운데 절반가량인 5천명의 선교사가 이슬람권 선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49개 국가에서 종교로 신봉하는 이슬람의 인구는 대략 13억에서 16억으로 추산했다. 이러한 인구로 볼 때 선교사의 인력은 그리 많지 않다.
전씨는 이슬람권 선교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해의 선교, 사랑의 선교’라고 강조한다.
기독교의 시각으로 이슬람을 해석하기 전에 이슬람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씨는 이슬람권 선교를 위해 풀러 신학대학에서 이슬람학으로 선교학 박사를 취득하기도 했다.
파키스탄에서 선교사 시절 짜안드 미스합(짜안드는 우르두어로 ‘달’이란 뜻이며 전씨의 성을 펀잡어로 쩐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미스합은 존칭)이라 불리었다는 전씨는 간증집회에서 파키스탄에서의 힘들지만 보람찼던 선교 생활을 참석한 교인들에게 생생하게 소개했다.
전씨는 이슬람권 선교에 대해 국외가 아닌 한국 내 이슬람권 선교에도 힘을 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씨는 “6.25전쟁 이후 터키병사들로부터 시작된 한국 내 이슬람 공동체가 지금 25만 명에 이른다”며 “이들 무슬림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들 이슬람 종교와 문화에 대해 선교사들이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씨는 1961년 이후 약 1년간 파키스탄에서 선교사 및 교사로 사역을 했다. 이후 1974년 귀국한 이래 전씨는 이화여대 신학대학원 원장등으로 학생을 가르쳤다. 지난 2월 정년퇴임한 후현재 이슬람 연구소 소장으로 이슬람권 선교를 위해 책 출간 및 국내 및 해외에서 강연활동을 벌이고 있다.
<유호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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