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과 로널드 레이건을 가리켜 ‘20세기가 낳은 그레이트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른다. 두 사람 모두 국민과의 대화에서 뛰어난 설득력을 보인 정치가들이다.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되려면 우선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 다음 자신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단순하게 포장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자기 주장만 길게 늘어놓거나 교묘한 논리를 펴 자기합리화를 꾀하는 것은 잔재주에 불과하다.
처칠의 연설은 듣는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영감을 주는 데가 있었다. 당시 연일 계속되는 독일의 공습으로 영국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전황을 살피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이같은 긴장된 상황 속에서 뛰어난 웅변가를 지도자로 가진 것은 영국의 행운이었다. 국민들은 매일 처칠의 목소리를 들어야 잠이 올 정도였다. 그의 목소리는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었다. 처칠은 라디오 시대가 낳은 위대한 인물이었다.
이에 비해 레이건은 TV시대가 낳은 수퍼스타다. “배우가 꼭 대통령이 될 필요는 없지만 대통령은 꼭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레이건 자신이 말했을 정도로 그는 TV와 대통령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했다. 매일 TV에 등장하는 대통령의 표정과 몸짓 모두가 국민 심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확실히 레이건은 배우로서의 연기는 B급이었지만 대통령으로서의 연기는 A급이었다. 그는 미국민들이 카터와 포드, 닉슨에게서 리더십 부족을 느껴 미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스피치나 제스처 하나 하나가 리더십을 보이는데 초점이 맞추어진 것은 이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유머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당신은 4년 전보다 잘 살고 있는가”와 “불경기는 이웃이 실업자가 되는 것이고 경제공황은 내가 직장을 잃는 것이며, 경기회복은 카터가 직업을 잃는 것”이라는 그의 선거 연설은 촌철살인의 언어에 가깝다. 그는 정적에 대해서도 유머를 잃지 않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민주당 팁 오닐 하원의장과의 입씨름은 유명하다.
레이건과 오닐은 모두 아이리시 출신이었다. 그래서 레이건은 백악관 디너에 오닐을 자주 불러 밤늦게까지 아이리시 특유의 조크를 나누며 그와 가까이 하려고 애썼다. 오닐도 이 때는 레이건을 칭찬하며 우정어린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는 으레 “레이건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무식하고 무능하다”는 등 송곳으로 찌르는 아픈 소리를 오닐은 서슴지 않았다. 레이건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여보, 당신 어제 밤에는 나의 친구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놓고 이렇게 비판하는 법이 어디 있소?”라고 나무라니까 오닐 왈 “당신과 나는 일과가 끝난 오후 6시부터 친구요. 그 이전에는 당신은 나의 적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레이건은 정확히 오후 6시5분에 오닐에게 전화를 걸어 “오후 6시 넘었으니까 지금 당신 내 친구 맞지?”라며 협조를 구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유머는 인간관계에서 접착제 역할을 한다. 레이건을 미국민들이 못 잊어하는 것도 그의 서민적인 유머 때문이다. 그는 국민들에게 아버지처럼 느껴지게 하는 친밀감을 지니고 있었다. 레이건은 역대 대통령 중 링컨 다음으로 에피소드를 많이 남긴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는 국민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지도자였다. 레이건은 처칠처럼 위대한 정치가는 아니지만 국민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대통령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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