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커뮤니티의 나아갈 방향
LA 한인사회는 지난 35년간 외형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했다. 통칭 1만명이던 인구는 60만명을 넘어섰고 10여개에 불과하던 교회는 1,000개 수준, 수십개에 불과하던 한인업소는 수만개에 달하고 있다. 제퍼슨 가를 따라 몇몇 업소가 둥지를 틀었던 빈약하기 그지없던 한인 상가는 35년이 지난 지금 LA, 샌퍼난도 밸리, 인랜드, 오렌지카운티 등 남가주 곳곳에서 제각각 번듯한 코리아타운을 형성하며 번창하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가 30대의 성인으로 자란 것과 비교될 만큼 35년 전과 오늘 사이 한인사회의 변화는 엄청나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발전에도 불구, 한인사회의 내면적 성장은 미흡하다.
미국이라는 다민족 사회에서 당당히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몫을 챙기며,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성년의 커뮤니티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성년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은 스스로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고 사회 내에서 제 역할을 다할 만한 힘과 능력이다. 힘을 가진 커뮤니티만이 주류사회와 타민족으로부터 존중을 받을 수가 있다. 수는 적지만 막강한 정치력과 경제력으로 미국사회에 엄청난 입김을 행사하는 유대인 커뮤니티,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수적 규모로 주류사회를 압도해 가는 히스패닉 커뮤니티, 그리고 품질과 서비스 정신이 기초가 된 신용의 전통으로 미국사회 내에서 특별한 우대를 받는 일본 커뮤니티 등 이민의 선배 커뮤니티들에 비하면 우리의 존재는 아직 미약하다.
우리의 이민역사가 100년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1세 중심 한인사회가 형성된 것은 1960년대 말 개정 이민법으로 이민 문호가 열린 이후이다. 그 후 30여년 사이에 이 만큼의 외형적 성장을 이룩했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도 자랑할 만하다. 하지만 급조된 건물의 허술함 같은 위태로움이 한인사회 내에 항시 있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외형적 발전에 급급한 나머지 원칙을 무시한 편법주의가 내부적 위태로움의 근거이다. 각종 규제가 닥칠 때마다 근본적 해결책을 찾기보다 뇌물 수수로 위기를 모면하고, 정직한 보고보다는 서류조작으로 당장의 이익을 챙기는 근시안적 미봉책들이 성행했다. 어물쩍 넘어가는 적당주의, 단시간에 뭔가를 이루려는 한탕주의는 지금의 외형적 성장에 부분적으로 기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로 인한 병폐의 뿌리가 깊다. 세무 감사, 유명상표 불법복제 단속, 마사지 팔러 단속… 각종 단속 때마다 한인업소들이 단골로 그 대상이 되는 사태가 바뀌지 않고 있다. 몸에 밴 편법의 유혹을 끊어내고 우리에게 진정으로 힘이 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그 하나가 정치력이다.
경제적 힘이 한쪽 날개라면 도약의 다른 쪽 날개는 정치적 힘이다. 정치력 없이는 우리가 일궈낸 경제적 결실도 제대로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한 사건이 4.29 폭동이었다. 이후 정치력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나아졌지만 현실로 드러난 변화는 크지 않다. 김창준 의원이 불명예 퇴진한 이후 연방의회에 진출한 한인은 아직 없고, 주 의회나 주정부를 둘러봐도 한인들 숫자는 미미하다. 한인사회가 지금보다 한 단계 위로 뛰어오르기 위해서는 정치력과 경제력의 두 날개가 필요하다.
존경받는 커뮤니티로 도약하기 위해서 두 날개보다 더 시급히 필요한 것은 도덕성이다. 경제력과 정치력이 날개라면 도덕성은 몸통이다. 도덕성 없이는 경제력도 정치력도 한계가 있다. 우리는 이 미국사회에서 어떤 민족으로 자리 매김하고 싶은가.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커뮤니티를 유산을 남겨주고 싶은가. 도덕적 힘과 정치적 힘, 경제적 힘이 삼위일체가 될 때 한인사회는 타민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약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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