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테러 조직에 납치됐던 김선일씨가 끝내 살해됐다. 김씨의 처형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에서는 반전 여론이 들끓고 파병을 철회하라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고 한다. 김씨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냉정히 따져 봐야 한다.
김씨가 처형되기 며칠 전 한국 국회의원 수십 명은 이라크 전쟁과 관련 미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국회에 추가 파병 중단 결의안이 조만간 상정된다고 한다. 이런 뉴스는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번 테러를 저지른 조직도 이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테러의 목적은 무작정 사람을 죽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어떤 정치적 목적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테러리스트 입장에서 보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데 누구를 상대로 테러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테러를 해봐야 오불관언인 나라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보다는 지금 한국처럼 반미가 유행이고 반전 목소리가 높은 나라를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이라크 철군 목소리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테러범들은 한국인을 잡으려들 것이다. 조금만 더 찍으면 나무가 넘어갈 것이란 유혹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힘들겠지만 테러리스트와는 상대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테러 행위에 자극돼 반응을 보이면 보일수록 테러리스트의 손에 놀아나게 된다.
이보다는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 이라크에서 납치된 사람은 한국인만이 아니다. 미국인을 포함 유럽과 일본 등 미국과 가까운 나라 국민들은 모두 테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인들도 일찍이 목사 포함 6명이나 납치됐다 풀려난 적이 있다. 지금 반성해야 할 일은 한번 경고가 있었는데 어떻게 이라크 내 한국인의 안전을 그토록 소홀히 방치했나 하는 점이다. 김씨는 미군에 물건을 납품하는 무역회사 직원이었다. ‘미군의 앞잡이’로 몰려 위해를 당하기 쉬운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납치 위험에 대한 경고나 신변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이라크 철수 여론이 높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들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희생됐다고 오랜 시일 고심 끝에 내린 정책을 바꾼다면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라크 전후 질서 수립에 한국이 해야할 역할과 무엇이 진정한 국익인가를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하나 이라크 파병을 쉽게 번복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북한 핵 문제에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6자 회담이 성공을 거두려면 한미간의 공조가 필수 불가결하다. 한국이 이라크 문제에 관해 미국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북한 핵 문제를 푸는 데 우리 측 입장을 들어줄 리 만무하다.
만약 이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아 무력을 사용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한 사람 목숨의 수 백만 배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집권당인 열린 우리당은 당론으로 파병 재고 불가 입장을 재천명했고 국가안전보장회의도 이를 확인했다.
이제 와서 한국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제2, 제3의 테러 피해자만 늘어난다. 지금 한국 정부가 할 일은 이라크 주재 민간인을 피신시키거나 안전 보장에 만전을 기해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고 국민과 파병 반대자를 설득해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김용직 성신여대·UCLA 객원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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