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 소식이 전해진 후 사이버 공간도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파병을 철회해야 한다’는 쪽보다는 ‘과거는 파병에 반대했으나 이렇게 된 이상 파병해야 한다’는 쪽이 좀 많은 듯 하다. 인터넷 사이트 뉴스폴에 따르면 이번 사건 후 파병 찬성에서 반대로 의견을 바꾼 사람은 전체의 11%로 반대에서 찬성으로 바꾼 사람 21%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일부 네티즌의 과격한 반응이다. “이렇게 된 이상 전투병을 파병해야된다”는 약과고 “당장 이라크를 초토화시키자”부터 “‘아랍인 척살대’를 조직하자”는 글까지 올라와 있다.
이번 만행을 저지른 테러 조직이 노리는 것은 우선 파병 국간의 갈등이다. 이들은 스페인 총선 며칠 전 마드리드 열차 테러 사건을 일으켜 재집권이 예상되던 친미 정부를 무너뜨리고 사회당 정부가 들어서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이라크 여러 국적의 외국인 중 한국인을 타겟으로 삼은 것도 한국의 반미 정서와 파병 반대 움직임을 고려했음은 물론이다.
테러 조직이 이에 못지 않게 원하는 것은 파병국과 이라크 인과의 반목과 적대 감정을 불러 일으켜 서로 치고 받고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어느 네티즌 말대로 국내 이라크 인들에게 복수의 테러를 가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보복이 보복을 낳는 악순환만 계속될 뿐이다.
무고한 사람이 죽은 지금 한국민이 느끼는 분노는 이해가 가지만 감정에 치우쳐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사태 수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와서 파병 철회를 다시 논한다거나 극소수 테러 분자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이라크 인들에 해를 입히는 것은 테러리스트의 공작에 놀아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서양의 고전 오디세이를 보면 끝 부분에 이르러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와 감격의 재회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대목이 나온다. 이 때 그는 어머니 페넬로페와 결혼을 하겠다고 몰려든 구혼자들에게 모욕을 당한다. 분노를 못이기고 그가 칼을 뽑으려는 순간 오디세우스는 “분노하기는 쉽다. 어려운 것은 적절한 때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정도의 분노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를 제지한다. 나중에 집안을 거덜 낸 구혼자들을 무기를 제거한 상태에서 한방에 모두 가둬놓은 후 오디세우스는 “지금이 바로 분노할 때”라며 아들과 함께 이들을 모두 해치운다.
지혜와 냉정함은 요괴가 들끓는 세상을 헤치고 오디세우스로 하여금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게 해준 무기다. 지금 한국인들이 해야 할 일은 냉정을 되찾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테러리스트들을 분노케 하는 일인지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라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