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이 얼마 전에 숨을 거두면서 임종순간을 지켜보는 자녀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믿음 생활을 하라” “형제끼리 서로 도우며 살라”는 말이 아니라 “절대 보증서지 말라”는 것이었다. 친구 빚 보증을 섰다가 빚더미에 앉았던 자신의 과오를 자녀들이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심경의 토로였다.
30대 후반의 직장인은 형의 사업자금 조달과정에서 보증을 섰다가 형이 망하면서 졸지에 채무자가 됐다. 그는 채권자에 의한 원천 차압으로 뭉텅이가 잘려나간 봉급을 받을 때마다 아내 볼 낯이 없기도 하고 허덕이는 가계가 안타깝기도 해 착잡한 심정이다.
한 현역 장교는 진급 때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 상관의 은행대출에 보증을 섰다가 법정에 서게 됐다. 보증은 둘째치고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에서 보증이 오고 간 것은 뇌물이 오고 간 것과 진배없다는 법원 판결에 당혹해 했다.
“보증은 절대 서지 말라”는 것은 일종의 금언이다. 그러다 보니 보증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그래서 누가 아무개 보증을 서주었다고 하면 둘의 관계가 범상치 않음을 입증한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차남 전재용씨가 한 여자 인기탤런트의 보증을 서주었다. 지난해 5월 조지아주에서 현찰 35만1,800 달러로 구입한 방 4개, 욕실 4개인 2층집 주인으로 돼 있는 이 탤런트가 5개월만에 소유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신원보증란에 서명했다.
정상적인 매매라면 세금을 내야하는데 세금이 ‘0’으로 표시된 것을 보면 매매가 아니라 소유권 이전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그래서 신원보증인이 2명 필요하며 여기에 전재용씨가 서명한 것이다.
미국에서 현찰로 집을 사는 것이나, 집 소유주가 5개월만에 소유권을 양도한 것이나, 모두 이례적이다. 무언가 다급한 속사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에 전재용씨가 끼여 있다. 검찰이 2,000억 원대로 추정되는 전두환 비자금의 친인척 분산 은닉 여부를 수사하던 시기와 탤런트의 주택 현찰구입, 5개월만에 양도, 전재용 보증 등 일련의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전씨가 이 탤런트만 보면 ‘깜빡 죽는’ 맹렬 팬이라서 보증인이 됐을 수 있다. 아니면 전씨가 남의 딱한 사정에는 무조건 팔을 걷어붙이고 돕는 의협심 강한 성격이라서 보증을 섰을 수도 있다. 이도 저도 터무니없다면 애당초 탤런트를 서류 상 주인으로 내세웠다가 일이 꼬이자 ‘구린 데’를 가리기 위해 보증을 설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을 토해내라는 국민의 요구에 “내 재산은 29만원뿐”이라 면서도 골프 치고 해외여행 다니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의 주머니를 얄팍하게 할 리 없다. ‘맹렬 팬‘ ‘의협심 강한 젊은이’ ‘진짜 소유주’등 세 가지 가설 중 하나를 꼭 집을 수는 없지만, 재산은닉 수단으로 탤런트를 방패막이로 이용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 진짜 소유주가 따로 있다는 설이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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