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모어의 ‘파렌하이트 9/11’을 보며 노트를 가지고 가 적다 영화의 아둔함에 지쳐 포기하고 말았다. 부시의 사촌 존 엘리스가 폭스 뉴스에서 부시가 대통령이 됐음을 선언한 덕에 고어에게서 권좌를 뺏은 부시가 미국을 석유회사 핼리버튼과 아버지 부시가 관여하고 있는 칼라일 그룹, 사우디아라비아에 바쳤으며 전쟁에 몰아넣었다는 게 줄거리다.
엘리스 에피소드는 모어식 사실 왜곡의 표본이다. 그는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을 단지 가까이 늘어놓음으로써 무슨 관련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수법을 쓰고 있다. 어떻게 일개 사촌 저널리스트가 대선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지 알 수 없다.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은 부시가 아니라 정신병 환자를 지지자로 두고 있는 민주당에 대한 경고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지루할 뿐 아니라 만든 방법이 역겹기 짝이 없다. 한 순간은 부시 정책보다 제작 기법에 대한 반감이 더 컸다.
부시에 대한 비판은 모어가 한 것처럼 농담으로 흘리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다. 월남전 때 일부 미국인은 닉슨이 좋아서가 아니라 반전운동가가 미워서 그를 지지했다. 역사가 되풀이되지 말란 법은 없다.
모어는 이 영화에서 사담이 유엔 결의안을 수없이 무시했으며 얼마나 악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전쟁 전 이라크는 행복하게 웃는 이라크 인들이 아랍 민속 축제라도 벌이는 분위기다. 독개스에 살해된 쿠르드족 마을은 찾아볼 수 없다. 구역질나는 누락이다.
부시 비판은 부시 증오자를 흥분시키지만 금방 무너질 근거 없는 음모론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 모어 영화의 성공은 지금 미국에서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반 부시 진영끼리는 신이 나 떠들지만 나머지는 이에 식상해 하고 있다.
철부지 기법으로 제작되고 저널리즘의 최소한 요건도 갖추지 못한 모어의 작품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모욕이다.
리처드 코언/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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