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허무와 공허가 가득찬 재즈시대에 어울리는 로맨틱한 피아노 협주곡을 들라면 단연 라프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2,3번)일 것이다.
라프마니노프의 음악들이 현대에도 어필하고 있는 것은 어둡고 불안한 선율미 때문이다. 긍정보다는 불안하게 떨리는 음표… 어딘가 현대인의 부서진 의식을 감싸주는 듯한 어두운 떨림… 이방으로 내 팽개쳐진 듯한 고독한 로맨티즘은 이시대의 표본적인 음표이다.
이 라프마니노프를 있게 한 음악가는 누구일까… 라프마니노프는 러시아 태생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영향을 받은 작곡가였다. 그러나 그 자신 차이코프스키를 뛰어 넘지 못한다는 좌절감으로 정신치료까지 받았던 작곡가였다. 그만큼 차이코프스키의 영향력은 컸고, 또 넘어야 할 장벽이었다.
라프마니노프의 음악을 듣다보면 차이코프스키보다는 슈만의 요소를 엿볼 수 있다. 물론 라프마니노프와 슈만은 매우 다른 개성의 소유자들로 각자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작곡가들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피아니스트였다는 점, 그리고 피아노 분야에서 최고의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는 점등은 비록 다른 색채의 음악을 남기긴 했으나 감성과 지성미를 조화시킨 닮은 꼴의 작곡가들이었다.
로버트 슈만(獨, 1810-1856) 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단연 피아노 협주곡 a단조이다. 악상의 풍요로움과 환상적인 테마는 독일 낭만주의의 최고봉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피아노 협주곡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베토벤의 ‘황제 협주곡’(5번)이다. 꽝!하고 터져나오는 울분의 포효는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격앙시키며 낭만파의 선두로서 그 황제 적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피아노 협주곡 하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일 것이다. 베토벤의 ‘황제’ 못지 않은 스케일이나 선율적 아름다움 측면이나 만인의 가슴 속에 깊이 아로새겨긴, 역시 피아노 협주곡의 최고봉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밖에 라프마니프의 피아노 협주곡,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등 수많은 작품들이 음악 팬들의 가슴 속 깊숙이 자리잡고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슈만의 협주곡의 경우는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의 측면에서 그 진가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슈만은 음악가 중에서 가장 교양이 풍부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작곡가로서뿐 아니라 음악 평론가로서도 필명을 날린 바 있는 슈만은 경박한 리듬보다는 깊이 있는 작품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피아노 협주곡(a단조), 첼로 협주곡(a단조)등이다. 첼로 협주곡의 경우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등을 누르고 가장 품격 있는 첼로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마치 음악을 귀에 맞추기보다는 마음에 맞추고 있다고나 할까, 시(예술)적 감수성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 바로 슈만의 음악들이다. 정열의 낭비를 최대한 절제하고 있으면서도 낭만적인 정열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슈만의 예술이 고급예술로 평가 받고 있는 이유이다.
슈만의 음악을 들으면서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길… 봄비를 맞으며 걷는 다면 애인이 따로 필요 없을 지경이다. 음악 자체가 애인이 되어 무한한 감미로움으로 감싸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딘가 따스하면서도 정답고, 정다우면서도 애수 젖어있어 있는 피아노 협주곡은 마치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혹은 ‘이별곡’등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슈만은 그의 부인 클라라 슈만 (피아니스트)을 위해 수많은 피아노곡을 남겼는데 피아노 협주곡이야말로 클라라와의 정다운 속삭임이 담겨있는 듯한 감미로움이 가득 차 있는 작품이다.
베토벤적인 열정보다는 우정…, 속삭임 같은 다정다감한 세계를 펼쳐내고 있는데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 로맨틱한 감정이 이처럼 아름답게 표현된 경우도 드물 것이다. 마음 속의 봄비로 표현한다면 적당할까, 결코 강렬한 표현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으면서도 내면에 와 닿는 정다움이 감미롭다.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그의나이 31세때 구상한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이 발전된 곡이라고 한다. 선배 베토벤의 피아노와 합창을 위한 환상곡을 모방하고 있음인지 스케일이 당당하고, 피아노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있는 점이 뛰어나다.
1악장은 알레그로 형식인데 전 악장 중 가장 아름답다. 2악장은 안단테, 3악장으로 피날레로 이루어져있고 특히 환상풍으로 전개되는 1악장은 라프마니노프의 협주곡을 연상할 만큼 환상 협주곡의 계통을 세우고 있다. 슈만이 내놓고 있는 가장 낭만적인 작품 중의 하나로, 전편에 흐르는 선율은 푸르지는 않지만 푸르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지는… 애수의 봄비로 촉촉이 젖어들게 하는 곡이다. 푸르른 하늘… 누군가에 그리운 꿈 수 놓고 싶어질 때 슈만의 협주곡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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