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건국 초기 대통령들 특징의 하나는 부부간의 금슬이 좋았다는 점이다. 청년 워싱턴을 보고 한 눈에 반한 마사는 평생 그를 깊은 사랑과 존경으로 대했으며 그가 대통령직을 물러난 후 몇 년 만에 죽자 너무 상심에 빠져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못했다. 워싱턴 또한 그녀를 가장 신뢰하는 일생의 반려자로 여겼음은 물론이다.
두 번째 대통령인 존 애덤스와 애비게일의 러브스토리는 미국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된다. 남편이 미국 독립 운동을 하느라 오랜 세월 집을 비우자 그녀는 혼자 농장일과 가사를 돌보고 네 자녀를 기르는 것은 물론 수많은 편지를 통해 남편의 정치적 동반자와 보좌관으로서의 역할까지 다 했다. 그녀가 남편과 주고받은 편지는 지금까지 미국 초기 역사를 연구하는 주요 자료로 쓰이고 있으며 이중 “여성의 권익을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부분은 특히 유명하다.
세 번째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 또한 부인 마사를 끔찍이 사랑했다. 아내가 일찍 죽자 그녀를 잊지 못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일설에는 아내가 죽기 직전 다시는 결혼하지 말라는 약속을 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내가 죽은 뒤 그가 보인 비통함은 주위를 숙연케 한 것으로 전해진다.
네 번째 대통령인 제임스 매디슨과 돌리 역시 워싱턴의 소문난 잉꼬 부부였다. 돌리의 유쾌함과 재치는 비사교적인 남편이 무난히 워싱턴 정계를 누비고 다니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 부부는 워싱턴 부부처럼 자식은 없었지만 평생을 화목하게 보냈으며 돌리는 남편이 죽은 뒤에도 80세까지 장수하며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미 건국의 기초를 다지고 행복한 가정 생활을 누린 이 네 대통령의 공통점의 하나는 애덤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식이 딸린 부자 집 과부와 결혼했다는 점이다. 워싱턴의 부인 마사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두 아이가 있었고 제퍼슨의 부인 마사와 매디슨의 부인 돌리도 전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를 하나씩 두고 있었다. 이들 과부의 전남편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초창기 미국인들의 삶이 험난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초창기 대통령들과 비슷한 인물이 하나있다. 자식이 딸린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한 존 케리가 그 사람이다. 포르투갈 선교사 집안 출신으로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통역사로 일하다 귀화한 케첩 메이커 하인즈 집안 미망인 테레사 또한 특이한 배경을 갖고 있다.
과연 케리 부부가 백악관을 차지, 초기 대통령 부부들처럼 원만한 가정을 꾸리며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올해 대선을 지켜보며 갖는 관심거리의 하나다.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