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감사패를 증정하겠습니다.” (감사패를 증정하면서) “저희 가족들 모두를 미국에 초청하여 이렇게 잘 살게 해주신 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국제 결혼한 누님의 초청으로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시에 와서 살고 있는 내 친구의 가족들이 미국인 매형의 환갑잔치를 벌이면서 매형에게 감사패를 증정하는 장면이다. 환갑 잔치에 무슨 감사패인가 의아한 분들도 있었지만 장내는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서 나도 멤버로 뛰고 있는 미주리주 한국문화원 멤버들의 궁중무, 부채춤 그리고 사물놀이패의 공연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고, 환갑을 맞은 주인공 로널드 하지스도 멋진 한복을 입고 함께 신명나게 춤을 추었다.
정말 근사한 잔치였다. 잔치자리에는 35년 전에 만나 함께 미국에 온 환갑잔치 주인공 내외분을 비롯하여 그 내외분이 초청하여 이민 온 형제자매 - 형제자매 친인척 - 형제자매 사돈들 - 사돈네 친인척 - 친인척의 친인척 그리고 동네 한인 친구들, 미국인 친구들...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했다.
미국에 살면서 수없이 한인들이 주최하는 행사나 잔치에 참석해 봤지만 나는 이번만큼 아름답고 의미 있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국제결혼의 의미는 무엇일까? 미주 한인사회는 이민 초기 유학생들이 공부하러 왔다가 주저앉아 이민자가 된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제 결혼한 누나(혹은 누이) 덕에 이민 온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본격적인 미국 이민은 1970년대부터 시작한 누나들의 결혼이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나가 미국인과 결혼하여 미국에 정착, 형제와 부모를 초청하고, 그 형제가 또 자기 피붙이를 초청하고 이렇게 연쇄적으로 누나 한 사람이 46가정을 초청한 것으로 통계수치도 나와 있다.
그런데 슬프게도 우리 동포사회는 누나들에 대해서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누나들이 자기들을 초청한 사실을 감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지난 15년 간 한인 언론계에서 활동하면서 “국제 결혼한 누나 덕에 미국에 이민 왔다”고 먼저 스스럼없이 나에게 털어놓은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누나들은 달랐다. 대부분 성공적인 결혼생활, 훌륭한 가정을 이룩해 냈다. 그들은 용감하게 개척했다. 서로 다른 문화의 결합이 국제결혼이라면 그들은 개척과 모험에 성공했다. 부모, 형제간에 대한 사랑은 물론 조국 사랑도 누나들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주류사회에 누구보다 깊이 참여하여 코리언을 알리고 영어도 우리보다 한 수 위다. 그들은 유관순의 후예요, 수없이 짓밟히면서도 5,000년 역사를 이어온 한국 여인들의 끈질긴 생명의 맥박이다.
그런데 더욱 자랑스럽고 고마운 사람들은 이러한 누나들을 끔찍이 사랑하고, 누나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준 미국인 매형들이다. 한 사람의 형제를 초청하여 미국에 살게 해주는 일은 쉬운 일인가. 공항에서부터 자립 할수 있을 때까지 누나들과 똑 같은 마음으로 돌보아주었던 사람들이 바로 이들 매형들이었다.
만인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매형,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쳤던 스프링필드의 내 친구와 그 형제간들의 마음이 우리 모두의 마음이어야 한다. 환갑 때만이 아니라 생일 때마다 감사패를 드려도 시원찮다. 그런 마음과 행동이 곧 사람의 도리요 사람 사는 맛이다.

이계송/ 세인트루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