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미국에서 한국 이야기를 아무리 거론해 본들 별 소용없는 일이라 가급적 자제하여 왔으나 요즈음 내 고향 충청도가 천도문제로 가타부타 말들이 많아 한 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옛적부터 충청도 사람 하면 양반으로 대접을 받아왔다. 양반은 본래 이조 중엽시대에 지체나 신분이 높은 사람으로 문반과 무반이 될 수 있는 집안의 출신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 충청도가 가당치 않게도 멍청도로 불려졌던 때가 있었다. 충청도 사람의 언행이 느리고 더뎌 약삭빠른 사람들 눈에는 좀 아둔하게 비춰졌던 모양이다. 논산훈련소의 구보(달음질)가 충청도 출신 훈련병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까.
충청도가 멍청도 소리를 듣게 된 결정적 이유는 소위 3김 시대에 영남과 호남정권 창출에 지렛대 역할을 했음에도 양반행세 하느라 제 밥그릇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후 충청도 사람들도 자기 고장 출신의 선량들로 독자적인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어 그나마 양반의 체통을 세울 수 있었다.
충청도 사람은 이렇듯 필요할 경우 고집도 부릴 줄 알며 동작 또한 뜨지만 않은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운동선수인 박찬호, 박세리 두 사람 모두 충청도 사람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김종필씨의 은퇴가 한참 미뤄진 것을 보면 충청도 사람은 역시 느리긴 느린 것 같다.
지금 한국의 여야는 신행정 수도를 충청남도 공주, 연기 지역으로 옮기는 문제로 정쟁을 일삼고 있는데 그토록 크고 엄청난 일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한국의 위정자들이 어째서 북한의 인권이나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같은 자명한 문제에는 꿀 먹은 벙어리인지 모르겠다. 새로운 수도가 건설된다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 인근 땅값이 오르고 있다. 요즈음 아내의 표정이 매우 밝아진 속셈도 그 곳과 멀지 않은 지역에 전답이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수도는 서울에서 보듯이 전국 어느 지방 사람이 와서 살아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멜팅팟 역할을 해내고 있다. 나도 충청도 출생이지만 서울에서 살다보니 어느새 서울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미국에는 한국에서도 사라져 가는 지방 향우회가 조직되어 있다. 충청향우회도 조직되어 있어 동향 사람들을 만나 회포도 풀고 소식을 전하며 애향심도 기르고 있다. 더구나 뜻 있는 일도 많이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창립 당시부터 “나는 한국사람이지 충청도 사람이 아니다”라며 가입 권유를 뿌리쳐 왔다. 우리 나라가 두쪽 난 것도 서러운데 이곳 남의 땅에까지 와서 지방색으로 나뉘어 서로 편든다는 것은 향우회가 내세우는 취지와 명분이 아무리 좋고 훌륭한 사업을 펼친다 해도 미주 내 한인동포의 단합보다는 분열을, 장점보다는 폐단을 더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지방 향우회에게까지 없애라고 말하지 않겠으나 충청도가 진짜 양반들의 고장이 되려면 향우회를 자진 해산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LA에는 100여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우리 한국사람들 끼리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자기 고향사람 찾으며 “저기 뻐스 오네유”하는 사이 차는 글로벌 시대를 저 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이제 충청도 사람은 새로운 행정수도 출신답게 그런 작은 일에서 벗어나 좀 어른스러워지고 마음도 활짝 열어놓아야 양반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가만 있자. “혹시 이 말도 지역 차별 아닌가 염려 되네유.”
조만연/수필가·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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