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란’은 아랍어로 늑대란 뜻이다. 이는 사담 후세인의 장남이었던 우다이의 별명이기도 하다. 페다인 민병대를 이끌며 2,500만 이라크 인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그는 네로이래 가장 창조적인 고문 예술가의 한 명이었다.
길 가다가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으면 아무나 잡아다 강간을 하는가 하면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에게는 황산으로 목욕하는 벌을 내렸다. 그가 농장에서 기르는 사자 우리 안에 던져져 뼈만 남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한번은 아버지 후세인에게 둘째 부인을 소개해 준 바디가드를 연회장에서 몽둥이로 때려죽인 일도 있다. 이 일로 아버지와 사이가 벌어져 후계자 자리를 동생 쿠사이에게 빼앗기는 벌을 받기는 했다.
우다이 이름을 듣고 떨지 않은 이라크 국민은 없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운동 선수들 사이에서 그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라크 올림픽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시합에 지는 선수들에게는 잔혹한 고문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4년 월드컵 때는 이라크 팀이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축구팀 전원에게 콘크리트로 만든 축구공을 나눠주고 차게 시켰다. 한 번은 경기에 진 선수들을 홀랑 벗겨 자갈밭을 끌고 다니다가 오물 통에 던진 일도 있다. 온 몸이 곪아 죽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라크 육상 선수 중에는 새로 아스팔트를 깐 길을 손발로 기어가며 매를 맞는 벌을 받은 사람도 있다.
이렇게 혹독한 기합을 받았건만 이라크 팀은 60년대 이후 한번도 메달을 받아 본 일이 없다. 조금만 잘못 하면 고문실로 끌려갈 생각에 주눅이 든 선수들이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런 우다이가 사살 된 지 1년 만에 이라크 축구팀은 사상 처음 올림픽에서 4강에 진출하는 위업을 남겼다.
1년 전 축구연맹이 해체되고 IOC로부터 자격 정지까지 당한 이라크가 여기까지 올라오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2월 IOC로부터 활동 재개를 허락 받았으나 본선 출전을 이룬 독일인 감독까지 테러 위협에 시달리다 사표를 낸 상태여서 선전은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아드난 하마드 코치가 감독을 이어받아 친선경기를 치르면서 생긴 수익과 헌금 등으로 재정을 해결하고 외지에서 활동 중인 선수를 초빙하는 등 분투 끝에 기적을 이뤄냈다. 임시 정부로부터의 지원이나 국민들의 성원도 별로 받지 못하고 감독과 선수들이 똘똘 뭉쳐 이런 일을 해낸 것을 보면 이라크 인들은 저력이 있다.
그러나 과연 우다이가 살아 있었다면 이것이 가능했을까. 이라크 축구팀의 4강 진출은 당장은 힘들지만 포악한 독재자가 사라진 나라에 희망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은 사건이라 생각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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