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스버그 추도사’를 비롯한 수많은 명 연설을 남긴 링컨은 미국이 낳은 대표적 웅변가다. 그 중에서도 1860년 2월 뉴욕 쿠퍼 유니언에서 행한 연설은 그를 무명 지방 정치인에서 일약 ‘비전 있는 대통령 감’으로 띄운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남이 써준 원고를 텔레프롬터를 보며 읽는 것이 관행이 된 요즘과는 달리 당시 정치인들은 자신이 할 연설 원고는 직접 쓰는 것이 원칙이었다. 링컨도 이 원고를 쓰는 데 제법 공을 들였다. 그를 누구보다 잘 아는 법률 파트너였던 윌리엄 헌든은 “링컨이 원고 작성에 그처럼 정성을 쏟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연설은 유니언 홀을 메운 1,500여 청중을 열광시켰다. 한 참석자는 “처음에는 키만 크고 볼품 없는 인물이 올라와 실망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얼굴은 내면의 빛으로 빛나고 온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어나 야생의 인디언처럼 펄펄 뛰며 박수를 보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1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연설을 읽어보면 당신 사람들의 이런 열렬한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 안에는 연방 헌법을 채택한 39명 서명자의 철학과 헌법의 정신, 미국의 역사와 그 역사가 당시 미국인들에 요구하는 바가 찬찬히 적혀 있다.
화려한 수식어도 요사스런 말장난도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증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어째서 노예제 확산이 미국 건국 정신에 어긋나며 노예제 확산을 막을 정당은 공화당뿐인가 하는 가가 설파돼 있다. “정의가 힘이라는 믿음을 갖고 끝까지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해나가자”는 그의 명언은 이 연설문 맨 마지막에 나온다.
그의 연설문은 나중에 유인물로 만들어져 선거 운동 선전물로 쓰였다. 학술 논문 같은 이런 연설문으로 대통령 직을 요구하는 정치인도 대단한 인물이지만 이런 연설을 듣고 갈채를 보내는 청중도 보통은 아니다.
이번 주 내내 공화당 전당대회가 뉴욕에서 열린다. 첫 공화당 대통령 링컨을 가능케 한 곳이 뉴욕이지만 공화당이 이곳에서 창당대회를 열기는 처음이다. 이번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2일로 예정된 부시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이다. 들어봐야겠지만 지금까지 그의 연설 솜씨나 현재 미국 정치판 돌아가는 꼴을 보면 별 기대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스 인들은 인류의 역사를 금, 은, 동, 철의 시대로 나누고 시간이 흐를수록 지상낙원에 가까운 ‘금의 시대’에서 야만 상태인 ‘철의 시대’로 추락해간다고 믿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제퍼슨에서 링컨을 거쳐 부시와 케리에 이르는 미국 정치인의 수준은 그리스인들이 옳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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