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주일 간 한국 정계는 소위 과거사 규명의 문제로 열을 띄우고 있다.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고 나선 노무현 대통령의 주도로 시작된 논쟁은 날이 갈수록 열기를 더 해 가는 것 같다. 문제는 논쟁의 양상이 점점 더 추악해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약 2년 전 한국의 문인 단체에서 친일 문인 42인의 명단과 그들의 친일문학 목록을 발표한 일이 있었다. 필자도 그 때 이제는 정신 분열적인 교육을 우리의 자식들에게 강요하기 보다는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밝히고 지긋 지긋한 일제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여권이 들고 나온 과거사 규명 운동은 시작부터 순수하지 않은 동기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야당 대표 박근혜 씨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누고 쏜 화살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과거사를 글자 그대로 과거사로서 밝히는 것이 아니라 선대의 잘못을 현재에 살아 있는 그 자식을 겨냥하여 묻자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기에 이 운동은 시작과 동시에 희생자부터 내기 시작하는 추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씨를 계속 겨냥하자니 친일파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가졌던 여당권의 인사들이 먼저 추락을 시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우리 이제 연좌제 같은 야만스럽고 미개한 일은 하지 맙시다”라는 말을 못하고 있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대통령이 될 것을 그렇게도 입이 마르도록 되풀이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선대의 죄를 그 자손이 걸머져야 하는 연좌제의 부당성에 대해 말을 삼가고 있는 것이 한심하다.
도대체 부친이 일본 헌병 오장이었다고 해서 신기남 열린 우리당 당의장이 사퇴를 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으며 이미경 의원의 부친이 일본 헌병대에서 근무를 했다고 해서 그녀의 명예와 입지가 풍비박산이 되고 공개적인 사과를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중 누가 부모를 선택하는 자유를 가진 일이 있었던가. 앞으로 여야를 불문하고 얼마나 많은 인사들이 그들의 조상의 경력 때문에 이런 일을 되풀이해야 할지 아직 모르지만 아마도 상당한 숫자가 연루될 것이 명확하다.
과거사를 과거사로서 밝히는 것은 언제이고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학자들의 몫이지 정치인들이 할 일은 아니다. 천 년은 거뜬히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족보와 역사가 보존되어 있는 곳이 한국이다. 눈에 불을 밝히고 찾으면 누군들 자랑스럽지 못한 조상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지 궁금하다.
과거사 규명이라는 미명 아래 모든 국민이 수치스러운 얼굴을 돌리기 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사와 현재의 인물을 연계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할 것을 선언하여야 한다. 온 나라가 똘똘 뭉쳐 노력을 해도 경제가, 또는 나라 자체가 견디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이 때에 이러한 일에 국력을 낭비하는 것은 한심하다.
김철회/ 법정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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