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서 온 40년 지기 친구의 여섯 가족을 만났다. 20일 간의 관광 일정을 집에서 받아 소화시키려니 부담스러웠으나 이들을 친근히 받아드렸다. 그와 함께 지내는 동안 우리는 예나 다름없이 저녁이면 다감한 술잔을 기울이며 정담을 나눴다. 그러다 보면 한국의 정세에 관한 화두로 번져 언쟁이 되기 일쑤였다. 고국을 동경하고 지내는 나의 유아적 정서와 터 밭에서 살다 온 그와의 의견 접근을 기대 할 수 없었다.
대체로 모국 방문객을 접하고 보면 긴박한 한국의 경제 위기론을 편다. 그러나 100달러를 쉽게 만져 볼 수 없는 우리 입장에서는 그들의 씀씀이가 오히려 여유 있어 보인다. “국내 내수지수는 하강세로 곤두박질을 하고 있는데 관광 목적으로 해외를 드나들며 외화를 물 쓰듯 하고 있다”는 기사를 되씹으며 자연스럽게 친구를 생각했다.
그 역시 대 가족을 이끌고 온 경비가 적지 않을 뿐 더러 틈틈이 세계 여행을 두루 다닌 것으로 보아 경제 위기라기보다 한국 경제는 지금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친구는 당장 대통령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친구는 또 한번 나를 흥분시켰다. 요즘 우리나라에 3대 기적이 있는데 DJ 노벨상 수상, 월드 컵 4강 진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라 했다. 그는 축구 이외는 잘못된 것으로 단정했다. 그러나 엄연히 법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을 폄하하면 앞으로 대통령의 위상은 떨어지고 걸핏하면 탄핵시비에 휘말려 온전한 정사를 펼 수 없음은 자명하다.
국가의 질서는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의식에서 바로 선다. 산모가 진통을 거치지 않고 신생아를 얻을 수는 없다. 같은 울안에 살면서도 환란이 닥치면 네 탓으로 발뺌을 한다. 환란의 원인은 내게도 있다는 책임 분담을 받아 드리는 철난 사람은 몇이나 될까.
친구를 통해 한국 보수권의 울타리가 높다는 현실을 실감했다. 그렇다고 고희를 넘은 내 자신이 혁신도 아니며 특정인 지지자도 아니다. 해외에 사는 우리는 언제고 갈 수 있는 모국이 있음에 감사한다. 태극기 앞에서면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조국의 안정을 바라는 마음 왜 아니 간절하지 않으랴만 한 치의 여유 없는 부정적 시각의 위기론은 나와서는 안 된다.
김탁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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