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아파트
나이가 들어 노인 아파트에 들어갈 때면 노인들은 대개 두 단계의 감정적 통과 의례를 겪는다고 한다. 첫째는 “내가 어느새 이렇게 늙었는가”하는 서글픔이다. 무심히 여기던 나이가 새삼스럽게 묵직한 숫자로 느껴지며 “이제는 다 살았구나” 싶은 허망함에 빠진다고 노인들은 말한다.
하지만 일단 노인 아파트에 입주해 들어가고 나면 상황은 또 바뀐다. 구순의 노모와 가까이 있기 위해 2년전 노인 아파트에 입주한 67세 여성의 말이다.
“처음에는 서글펐지요. 그런데 노인 아파트에 들어가 보니 나는 한창 젊은 나이더군요. 젊은이 취급당하며 교회 갈 때나 장 보러 갈 때나 운전을 도맡아 하다 보니 다시 젊어진 느낌이에요. 나이에 대한 감각이 달라지지요”
“이 나이도 괜찮구나” 싶어지며 평상심을 되찾는 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노인 아파트는 노인 아파트대로 엄연히 한 사회를 형성하고, 그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60대는 청년, 70대는 중년, 80대가 노년이라는 것이다. 나이의 평가절하이다.
혹은 학생에 비유해 6학년, 7학년, 8학년으로 구분하기도 하는 데 상급학년 올라가는 게 질색인 것이 일반 학생들과 다른 점이다. 노인들이 특히 싫어하는 것은 7학년에서 8학년으로 올라갈 때. 대개 79살이 되면 7학년에서 안 떨어지려고 ‘구박을 받으면서도’ 7학년 그룹에 한 두 해를 더 붙어 지낸다고 한다.
이웃사촌들과 자고 나면 함께 어울려 노인학교에도 가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고, 이따금 동전내기 고스톱도 치며 무료할 틈 없이 바쁘게 사는 것이 노인 아파트 생활의 밝은 면이다. 반면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 노인 아파트의 또 다른 면이다. 한 노인은 전한다.
“앰블런스 소리가 제일 듣기 싫지요. 그 소리가 나면 또 누가 실려나가는 구나 하고 생각해요. 그렇게 실려 나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도 있고, 영영 못 돌아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노인들에게 앰블런스 소리보다 더 끔찍한 것이 있다. 앰블런스에 실려가지도 못하고 혼자서 맞는 죽음이다.
노인들에게는 심장마비나 뇌졸중 등으로 쓰러질 위험이 항시 있는데 그 순간 아무에게도 연락을 취하지 못하면 그대로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노인 아파트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다. 최근에도 LA의 한 노인아파트에서 80대 노인이 숨진 후 열흘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자녀들이 자주 전화라도 했다면 그렇게 오래 방치되는 일은 없었을 것 같아 안타깝다. 노부모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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