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곧 대학진학을 위해 집을 떠날 것이라는 생각해 왔지만 졸업식 직후 연대 여름학교 참석차 막상 한국으로 훌쩍 떠나버리자 소위 말하는 ‘빈 둥지 증후군’을 앓게 되었다. 그 애는 나에게 이별 연습을 톡톡히 시켰다. 함박웃음을 안고 돌아와서는 아예 짐을 싸 운전거리 8시간이 넘는 기숙사로 떠나버렸다.
그 애의 이삿짐은 새 학년 동안 잠시 있는 거주지를 위하는 것보다 거의 이민 보따리에 가까웠다. 혹시 도울 일이 있을까 하여 근처 호텔을 하루 더 잡아두었으나 아들한테 돌아온 대답은 “걱정하지 말라, 바쁘다, 또 올 필요 없다” 세 마디뿐이었다.
어릴 때부터의 단짝 친구 둘과 셋이서 룸메이트까지 같이 하게 되어서 두려움보다는 기쁨에 더 들떠 있는 그를 뒤로하고 남은 시간 남편과 둘째 아이와 미뤘던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가주 해변을 따라 LA까지 돌아 내려오면서 탁 트인 바다, 정말 망망대해에 펼쳐진 수 억년을 지켜온 자연의 웅장함에 놀라고 거기에 비하여 너무나 미미한 인간의 세계가 비교되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조그만 것에 슬퍼하고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고 아등바등 사는, 겨우 수명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인간의 삶은 찰나의 한순간밖에 안 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품안을 떠난 18년의 세월은 생각해보니 정말 눈 깜빡할 사이밖에 안 되는 추억이 되었다. 무사히 사춘기를 크게 앓지 않고 성장해준 아이가 고맙고 뒤도 안 돌아보고 새 삶에 풍덩 뛰어들어간 아이가 애틋하기 짝이 없다.
아이가 여름내 집을 떠나 있었으므로 예방주사 한번 맞아봤는데도 갑자기 온 집안이 텅 빈 듯하고 시간마저 멈춘 듯한 빈 둥지 증후군 증세가 아직 남아있다. 그 아이 물품은 아직 집안에 널려 있는데 아이만 감쪽같이 없으니 그런 것 같다. 평소에도 갖은 유도심문을 통해서야 주변 돌아가는 얘기를 겨우 마지못해 하는 남자애니 만큼 사실 집안의 적막감은 그의 부재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마지막 학기에는 자유를 선언하더니 아침에야 그의 귀가 여부를 겨우 알 수 있을 정도로 올빼미 생활의 연속이었고 설령 집에 있다 하더라도 컴퓨터 게임에 매달리니 귀하신 얼굴 마주하기조차 힘이 들었다. 감정기복이 심했던 청개구리 시절이 오히려 그리운 것은 그래도 그 때는 품안의 자식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세월이 흐르자 아이가 평온해지고 어른 티를 좀 내는가 싶더니 이제는 떠나야 한다고 했다. 그의 충고가 눈에 선하다. “왜 나를 믿는다고 말로만 하고 정작 믿지를 못하는가. 엄마가 나 대신 걱정을 미리 해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한테 전염될 뿐이다. 엄마는 일할 때가 제일 행복해 보인다. 프리랜스 작업량을 늘리고 나에 대한 관심 꺼달라.”
그리고는 자기는 좋은 부모를 가진 행운아라며 마음속 깊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자식을 위해 걱정을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잡이거늘 그래도 내가 하는 모든 말이 걱정으로만 들렸나보다. 어른이 되어 가는 아이에 대한 준비가 덜되어 적응이 늦어지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나는 네가 부럽다. 젊음이 있고 능력과 꿈이 있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무궁무진한 시간이 있어서.” 30년 전 이민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대학교 막 입학할 무렵 엄마가 나에게 하셨던 얘기를 아이에게 해주었다. 이제는 둘째가 떠나는 2년 후에는 남편과 둘이서 신혼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야무진 꿈도 꾸어본다. 자꾸 연습을 하다 보면 이별도 쉬워지겠지.
시어머니께서는 다 큰아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나서 몇 날을 우셨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도대체 남편이 부모님이 그리워 슬퍼한 적을 본 적이 없다. 이제 나도 아이를 그의 미래의 세계로 보내려고 한다. 아이는 훌쩍 자라서 힘차게 날개 짓을 한다. 이별의 연습은 이미 시작되었다.
애니 민/ 다이아몬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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