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은 이미 여러 해 전에 배운 바 있다. 특히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일이면 더욱 그렇다. 생각을 하더라도 후로 미루지만 그냥 지나버리게 된다.
이같은 하느님의 축복 받은 깨달음이 내게 왔던 것은 어려서 친구가 여섯 명이나 죽어 가는 것을 목격했을 때였다. 제일 나이 어린 친구가 16세, 가장 나이든 친구는 29세도 채 안됐었다. 뉴욕거리서 살았던 나도 그들과 같은 운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께서 나를 살려 주신 것이다.
지난 추수감사절 주말은 내가 연방교도소에서 10번째 맞는 명절이었는데 할머니가 90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교도소에 들어와 적응하고 있을 때 나는 할머니와 수없이 전화로 얘기하면서 내가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음을 말할 수가 있었다.
나를 늘 사랑하신 할머니의 추억은 내 가슴과 머리에 생생히 새겨져있다. 5세 때 한국에 계신 할머니를 처음 방문해서 만났는데 사시던 집 앞 가게에 나를 데리고 가서 캔디를 사주신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몇년 후 할아버지와 같이 미국에 오셨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뉴욕에 오셔서 우리 식구와 같이 사셨다. 어머니가 일 가신 동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셨고 나를 돌봐 주셨다. 시카고에 다른 친척집에 사시러 가셔서 내가 그 곳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내가 항상 먹을 것을 잘 먹게끔 챙겨 주셨고 내가 뉴욕으로 다시 올 때는 우리 집 식구가 좋아하는 음식을 꾸려 주시고 용돈까지 털어 주시기도 했었다.
한국서 가난하게 성장하셨고 한국 전쟁 때는 6명의 자녀들은 먹이기 위해 자신은 굶는 일이 보통이었다고 들었다. 90세를 사시면서 할머니의 평생 관심사는 자식들과 손자들이 넉넉하게 먹는 일이었다. 항상 자신을 희생하셨고 집안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다.
수감생활 10년 동안 할머니를 한 번도 만나 뵐 수는 없었고 마지막으로 껴안아 보질 못하고 장례식도 참석 못했지만 내가 할머니를 사랑하는 줄 알고 가셨기 때문에 내 마음은 평온해 질 수가 있다. 지금 만회할 기회는 없지만 언젠가 천국에서 만나 뵐 수 있음이 큰 위로가 된다.
이같은 생각들을 하며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은 매일 매일을 나의 마지막 날인 듯 살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절대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회가 다시 안 올지도 모르니까.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매일을 나의 마지막 날인 듯 사는 게 최선의 길이다.
(이씨는 31세로 1994년 뉴욕 차이나타운 갱단에 연루 체포돼, 연방교도소 수감생활을 해왔다. 거듭난 크리스찬으로서 옥중에서 청소년 선도사업을 해왔고 2005년 5월 석방되면 부모를 모시면서 “하느님이 마련해 주신” 청소년 선교를 위해 일할 계획이다.)
데이빗 이/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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