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맨하탄의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뉴시티 극장(Theater for the New City)에서는 남북한의 분단과 6.25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고통을 다룬 이색적인 연극이 공연됐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제목으로 막을 올린 이 연극은 휴전선을 배경으로 시작하여 북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하다 죽음을 맞은 노인의 장례식, 과거로 돌아가 사랑하는 남녀의 이야기, 일제시대와 해방 후, 분단과 6.25, 이산가족의 발생, 전국민을 울린 이산가족 상봉 장면 등으로 전개됐다. 한인과 외국인 젊은이들이 함께 열연한 연극이었다.
이 연극은 지난 1997년 창단한 비영리극단 ‘서든 인라이튼먼트 디어터’(Sudden Enlightenment Theater)가 해마다 무대에 올리고 있는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의 하나이다. 이 극단을 창단하여 극단 대표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김은희씨(44)는 뉴욕생활 10년간 연극에 미친 생활을 해 왔다.
연극에 대한 그의 열정으로 그는 한국에서도 하기 힘든 비영리극단을 미국에서 이끌면서 창단 이래 꾸준히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연기자들은 한인 1.5세, 2세와 외국인들이지만 내용은 주로 한국문화와 전통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동안 이 극단의 공연은 연극계의 상당한 호평을 받아 미국에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데 큰 몫을 했다.
김씨가 연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상명여대 영문과에 다닐 때 대학 연극반에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안 불교에 심취하기도 했던 그는 1985년 연극 선배의 소개로 극단 ‘광장’에 입단했다. 극단 광장은 당시 한국에서 꽤 명성이 있던 극단이었는데 그는 이 극단에 입단하면서 배우의 길을 접고 대신 연출을 시작했다. 그는 이 극단에서 조연출과 연출을 맡아 연극 ‘건달놀음’ ‘다이얼 M을 돌려라’ 등, 뮤지칼 ‘아가씨와 건달들’ ‘피핀’ 등과 어린이 뮤지칼을 무대에 올렸다.
그는 연극인으로서 본격적인 수업을 위해 1992년 도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입학했다. 그리하여 LA에서 1년간 생활하는 동안 그는 영화를 하려면 헐리웃이지만 연극은 뉴욕이 중심지라는 사실을 알고 다음해 뉴욕으로 옮겨오게 되었다고 한다.
뉴욕에 와서 보니 그가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학위를 받아야만 크게 인정을 받기 마련인데 미국에서는 학교에 가서 교수를 할 사람은 학위를 받지만 배우나 예술감독 등 현장 작업을 하는 사람은 실기 위주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도 미국에 올 때는 학위를 따서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미국의 실정을 알고 난 후에는 학위를 딸 생각을 접고 실기공부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H.B. 액팅스쿨에 들어가 연기공부를 하는 한편 연기는 대사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발레 아츠 스쿨에서 5년간 댄스 수업을 받았다.
그는 뉴욕에서 연기와 댄스 수업을 하는 한편 1994년부터 2년간 오프 브로드웨이의 극단인 아이언 댄스 앙상블 디어터(Iron Dance Emsemble Theater)에 들어가 배우와 조연출, 음향 스태프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인 극단에서 일하는데 한계가 있고 또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연극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극단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997년 그가 창단한 극단이 서든 인라이튼먼트 디어터이다.
이 극단은 미국이라는 특수사정 때문에 한인 1.5세와 2세, 외국인 배우를 오디션으로 뽑아 구성한 ‘다민족 극단’이다. 한국인 배우를 쓰고 한국인 관객을 상대로 연극을 하려면 한국에 가서 해야 하는데 미국에서는 한인 1세 배우가 없고 외국인 관객을 대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구성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이 극단은 외국인을 포함한 배우들이 영어로 공연하지만 연극의 소재만은 한국의 문화전통이나 한국의 현대 이슈에서 도출한 독특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1997년 이 극단이 창립기념 작품으로 공연한 ‘님’은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을 뽑아낸 작품으로 한용운의 시만 대사로 표현되고 나머지는 모두 동작으로 표현시킨 작품이었다
이 연극은 뉴시티 극장 안에 있는 치노 디어터에서 공연되었는데 너무도 반응이 좋아서 극장 측이 거의 매년 이 극단의 공연을 초청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듬해 공연한 ‘49재’는 한국의 고유 불교의식인 천도 의식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추구한 것으로 현대적 댄스와 바라춤 등 불교의식이 합쳐진 작품인데 호평을 받아 앵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한인이민 100주년을 맞은 2002년에는 이 극단에서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이민을 다룬 ‘사진 신부의 꿈’을 뉴욕서 공연했는데 또 다시 호평을 받아 이듬해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의 초청 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지난 3월에는 뉴욕의 4개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에서 청소년 배우를 뽑아 청소년 연극인 ‘우리 읍내’를 공연했다.철학적, 관념적 연극에만 주력해 온 이 극단은 이제 사회적 문제, 특히 이민사회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김씨는 이 극단의 대표이며 예술감독이라고 하지만 연극이 올려지고 극단이 유지되는 전과정에서 김씨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는 연극의 스토리를 각본으로 쓰고 배우를 오디션하여 배역을 주고 또 연출을 한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인쇄하고 홍보를 하는 일에서 의상과 무대를 꾸미는 일, 배우들의 생활비를 해결하는 일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형편
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돈을 버는 것 보다는 순수한 연극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비영리 극단을 고수하고 있다. 연극은 영화처럼 CD를 제작하여 대량 판매할 수도 없고 한인사회에 기부문화가 정착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항상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주말이면 경비 마련을 위해 틈틈이 프리마켓을 뛰기도 했다니 그는 연극에 미친 사람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그래도 김씨는 무대와 객석에서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교감하는” 연극의 매력을 버릴 수 없다고 한다. 연기자는 관객의 반응이 좋을 때 좋은 연기가 나오는데 뉴욕에는 관객의 반응이 좋아 연극할 맛이 난다고 했다.
그는 각 민족마다 대표적인 연극, 예를 들어 중국은 경극, 일본에는 가부끼 등이 있는데 한국에는 세계적으로 내세울 연극이 없고 외국의 희곡과 뮤지칼을 번역해서 공연하고 있는 실정이 안타깝다고 했다.
세계에서 한국처럼 역사와 문화전통, 외세의 침략과 전쟁 등 드라마틱한 이슈를 가진 나라가 드물기 때문에 우리의 소재를 발굴하여 우리의 연극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던 인라이튼먼트 극단은 미국정부에 등록되어 있는 유일한 한인 극단이므로 김씨는 이러한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생각 같아서는 자체의 소극장이 있었으면 하지만 이는 꿈도 못 꿀 일이라면서 연기자들이 연습할 수 있는 장소라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연극의 길을 가겠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기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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