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생긴 사진
얼마 전부터 리빙룸에 사진 하나가 새로 등장하였다. 지난 달 보스턴에 사는 큰딸이 내 생일을 전후해서 며칠 다녀갔는데 그때 찍은 사진 가운데 하나를 보내온 것을 아내가 그 곳에 놓아둔 것이다.
그 사진은 딸이 돌아가기 전날 아침, 내가 뒤뜰을 정리하고 부엌에 들어왔을 때 찍은 것이었다. 얼굴은 세면을 하기 전이라 덥수룩하고 차림새도 일할 때 입는 낡고 모양 없는 작업복이었다.
사진의 절반 넘게 차지한 얼굴은 나이 먹은 티를 숨기지 못할 만큼 이마와 입 언저리에 골이 패이고 눈 밑과 턱 그리고 목덜미가 울퉁불퉁 처진 것이 영락없는 촌로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이렇게 못 생겼나 낙심이 들 정도로 볼품없는 사진이었다.
이왕 만들려면 좀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을 골라야지 하필 멋대가리 없게 찍힌 아빠사진을 비싼 돈 들여 보내준 딸애가 못마땅하였고 그게 무엇이 좋다고 떡 하니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세워놓은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진이라면 나라도 언제든지 만들 수 있었다. 사실 나의 사진기술은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는 터였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사진을 찍어왔다. 그렇다고 무슨 예술작품을 찍는 것은 아니고 우리 주변의 경조사나 모임 또는 행사 같은 데서 스냅이나 기념될만한 장면을 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사진은 그냥 찍자는 것이 아니라 갖기 위한 것이 목적이므로 나는 가급적 사진에 나온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사진을 보내주고 있다. 친구나 친지들은 내 사진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막상 내 자신은 변변한 독사진 한 장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진을 찍다보면 재미있는 일, 눈 꼴 사나운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특이한 현상은 사진을 찍을 때 저마다 서는 위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 보면 가운 데 서는 사람은 항상 가운데, 옆에 서는 사람은 늘 옆에 이렇듯 사람마다 선호하는 자리가 있다. 그래서인지 맨 첫줄에 놓여있는 의자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얼굴이 그 얼굴들이다.
사진을 찍는 자리는 바로 그 사람의 인간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양식이 있거나 예의를 아는 사람은 가급적 다른 사람, 특히 연로한 분이나 몸이 약한 사람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하기 때문에 구석으로 몰리거나 맨 뒤에 서서 잘 보이지 않게 찍히기 쉽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보는 사람은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찍혔나를 보지 않고 그가 어떤 인간이었나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딸이 보내온 그 촌스럽던 사진은 볼수록 근사하게 느껴지고 있다. 이제는 딸이 어째서 비싼 값을 지불해가며 그런 사진을 만들어 보냈고 아내는 굳이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려고 했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오늘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딸에게 멋지고 활기찼던 옛날의 아빠보다는 어느새 늙어버린 지금의 아빠가 더 자랑스럽고 소중하게 여겨지리라.
아내도 왕년의 얼짱, 몸짱은 아니더라도 한 평생 곁에서 고락을 함께 하다가 주름이 늘어나고 힘이 빠져버린 남편이 더 믿음직스럽고 정답게 느껴지리라.
역사가 배어있는 사진, 인생이 담겨진 사진. 그 사진은 비록 못 생기고 잘 찍히지 않았다 해도 보는 사람에게 언제나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준다.
조만연/수필가·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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