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반상회
가족을 멀리 떠나 유학의 꿈을 안고 먼 미국 땅에 정착한 지도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언제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처음 미국에서의 몇 년간은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말 그대로 홈식(homesick)을 앓았었다.
특히 온 친지와 가족들이 다함께 모여 송편을 빚고 한 상 가득한 음식 앞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던 추석 때가 되면 더욱 그랬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추석 때마다 찾아가서 홈식을 달래곤 했던 장소가 있다. 버뱅크에 위치한 ‘캐스트 어웨이’(Cast Away)라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다.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주로 젊은 여성들이 프로포즈를 받으며 감동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곳에 특이한 점은 야외 공간에 팜트리 대신 길게 뻗은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것이다-10여년 전쯤이니까 지금은 아마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낙락장송은 아니지만 푸르른 소나무 사이로 바라보이는 휘영청 보름달은 그나마 잠시라도 느낄 수 있었던 고국의 정서였다고나 할까.
추석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들을 씻기고 잘 준비시키느라 정신없이 바둥거리고 있을 때, 도와달라고 할 때는 사라졌던 남편이 다 마무리되어갈 즈음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엽기적인(?)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추석도 다가오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 집에서 추석 반상회를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일 벌리기-좀 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사역 동원’쯤 되겠지만-로 유명한 남편 덕분에 옆에서 터뜨린 일들을 수습하고 주워 담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지만, 이번 제안도 여느 때처럼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 되었다. 하필이면 왜 지난 주 설교 말씀이 섬김의 삶에 관한 내용이었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건물에 11가구가 살고 있는데 그 중에 6가구가 한인들이다.
각자의 생활이 바쁘다 보니 지나가면서 얼굴 마주치면 인사 정도뿐이지 서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나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윗집에 한 가정은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두 달이 다 돼 가는데 미리 사 놓은 기저귀도 며칠 전에야 겨우 전해 주었다. 섬겨야 할 때 지체하지 말고 섬겨야 하는 것이 섬김의 비결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번 추석은 내 가정, 내 교회 식구라는 담을 너머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었던 소중한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내 가정이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섬김의 다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더 나아가 내가 속해 있는 교회가 또 다른 지역 교회와 지역교회들을 연결하고 섬길 수 있는 작은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지 영
(LA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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