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제 운명을 안고 태어난다고 한다. 시체말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 모두가 제 팔자 탓이란 말이다. 이른바 운명론을 일컫는 말이다. 칼빈은 그가 쓴 기독교 강요란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멸망 받게 태어난다” 바로 장로교에서 주장하는 ‘절대 예정론’을 낳게 한 말이다.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과 견줄 수 있는 이론이다.
사람은 누구나 제 뜻대로 일을 꾸미고 그 일의 마무리를 기다린다. 그래서 그 마무리가 잘되면 즐거워하고 그렇지 못하면 괴로워한다. 일이 잘못 되었을 때는 “그때 이렇게 했었더라면 일이 잘 되었을 텐데...”라고 뇌까려 본다. 그러나 일이 잘 되고 안 되는 것 모두가 운명 때문이다. 그렇게 되어지도록 운명이 정해진 셈이다.
지금 미국은 11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시끌시끌하다. 부시와 케리는 그 우열을 가늠하기가 무척 어려운데다가 지난 2000년 선거 때 플로리다에서 일어났던 운명의 갈림길 사건이 떠오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사실 지난 2000년 선거 때 만일 대법원장이 민주당 사람이었다면 고어가 이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 만사가 죄다 운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우리 인류 역사상 아주 큰 운명적 사건이 문득 떠올랐다. 바로 기독교와 불교가 그것이다.
기원전 3세기에 인도의 아리안 족의 아쇼카 왕이 그의 사신 몇 사람을 시리아,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 여러 나라에 보내어 불교를 전도하였지만, 서구를 통해 추진하려던 거의 포교정책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그 전도방향을 동쪽으로 바꾸었는데, 그 결과 불교는 융성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1세기에 사도 바울은 기독교의 복음을 아시아 여러 나라에 전도하려고 힘썼지만, 그 전도의 길이 자꾸 막히게 되어(성서에는 아시아 쪽으로 전도하려는 바울의 뜻을 성령이 가로막았다고 씌어 있다) 그는 그 전도의 방향을 서쪽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그는 마케도니아를 비롯하여 서구 여러 나라에 전도하였는데, 그 결과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어 마침내 오늘의 기독교가 되었다.
그런데 만약 불교와 기독교가 처음에 시도된 방향으로 흘러갔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서쪽으로 발전한 불교는 틀림없이 서구화되었을 것이며, 스님들은 산 속이 아닌 도시 한가운데에 세워진 사원에서 가운을 입고 설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쪽으로 향한 기독교는 도시 외곽에 터를 잡았을 것이고, 까까머리의 목사들이 설교를 하고 있지 않겠는가.
기독교에선 모든 종교가 오늘의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을 신의 섭리에 따른 예정된 일로 설명한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은 서구화되고 미국화된 기독교의 오늘의 모습이 처음부터 되어진 것처럼 잘못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독교의 참 모습으로 받아드리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튼 기독교와 불교의 선구자들이 꾀했던 뜻이 거꾸로 바뀌어 오늘의 기독교와 불교가 이룩되었으니 그 운명의 갈림길은 참으로 야릇하다. 따라서 이번 2004년 대통령 선거 땐 그 무엇이 운명의 갈림길이 될지 조물주만이 알고 있으리라.
윤 아브라함/명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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