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지 중에 늦둥이 아들을 가진 부인이 있었다. 위로 딸이 둘이었는데 마흔이 다 된 나이에 뒤늦게 아들을 얻어서 그랬는지, 그는 아이가 예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들을 보면 눈빛부터 달라진다”고 주위 사람들은 그를 놀리곤 했다.
그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가)떼를 써도 귀엽고, 잘못을 저질러도 사랑스럽고… 이러다 아이 버릇 망치겠어요”
특정 대상에 푹 빠져서, 무조건 좋기만 한 감정의 틀을 뚫고 이성적 논리가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상태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철인 요즘 후보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시각을 보면 그 부인 생각이 난다. 조지 부시와 존 케리 어느 후보에 대해서건 눈빛부터 달라질 만큼 푹 빠진 유권자는 드물겠지만 눈빛부터 달라질 만큼 특정 후보가 싫은 유권자들은 많은 것 같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한마디로 부시 대통령을 좋아하는 측과 싫어하는 측으로 나뉘는데 그 좋고 싫음이 확고하게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아서 후보들의 공약도, 3차에 걸친 TV토론도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한인 사회도 이분화 현상은 확연하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서건 선거를 화제로 올리기를 꺼리는 분위기이다. 섣불리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감정 싸움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은 구체적 사실이 들어설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담 후세인이 알 카에다와 무관하다는 사실,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똑같은 사실 앞에서 양측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민주당지지자들은 “잘못된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전쟁 수행 비용으로 재정 적자가 기록적이다. 바꾸어야 한다”고 분개하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후세인 같은 독재자를 그냥 놔두면 테러가 얼마나 더 기승을 부릴 것인가. 이왕 시작한 전쟁, 잘 끝내도록 지지해야 한다”며 여전히 부시를 두둔한다.
좋아하는 후보는 잘못을 해도 이해가 되고, 싫은 후보는 잘 해도 트집을 잡게 되는 심리이다. 이런 유권자들의 마음속을 알고 싶어서 몇 달전 선거 전략가들과 심리학자들이 뇌 반응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 결과를 보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사진을 보면 뇌의 감정적인 부분이, 반대 후보를 보면 이성적 부분이 반응을 한다. 지지 후보에 대해서는 감정이 우선 끌리고, 반대 후보를 보면 이것저것 비판하고 싶은 마음에 이성이 발동한다는 해석이다.
문제는 우리의 지지·반대가 얼마나 이성적 판단을 거친 결과인가라는 점이다.
후보의 정책이나 능력을 꼼꼼히 따지기보다는 언뜻 마음에 자리잡은 인상으로 입장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전에부터 있어 왔다.
예를 들면 미국 대선에서는 키가 큰 후보가 이긴다는 속설이 있다. 후보의 키를 보고 투표하는 유권자는 물론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후보가 믿음직스럽고 리더십이 있게 보여 마음이 끌렸을 때 그 무의식의 흐름을 짚어 보면 ‘큰 키’가 어느 단계에서 한몫을 했을 가능성은 있다.
얼마 전에는 또 머리숱이 많은 후보가 이긴다는 주장도 나왔다. 모발 이식 권위자가 역대 대선 결과를 보니 대머리인 후보보다는 헤어스타일이 탐스러운 후보가 승리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존 F. 케네디,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모두 머리숱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대통령을 뽑는데 무조건적이고 감정적인 호감이 결정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 모두 지금쯤은 지지 후보를 마음속으로 결정했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이성과 논리에 바탕 한 결과인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더 안전해졌는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우리의 살림살이는 나아졌는가, 미국과 세계 우방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부시 행정부는 국민 앞에서 정직한가, 케리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모두가 개선이 될 것인가 - 대통령 선거까지 앞으로 10여일, 찬찬히 따져보아야 할 의무가 유권자들에게는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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