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냉전의 빙하시대는 끝났다. 세계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지난 2000년 12월 10일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있었던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한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군나르 베르게 노벨 위원회 위원장이 했던 말이다. 어느덧 4년 전의 일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평화상 수상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것은 김 대통령 개인의 영광이기 보다 나라의 축복이며 민족의 자긍심을 한껏 높이는 일이라며 우리 모두가 기뻐했다. 물론 일부 국내외 동포 가운데는 김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투쟁과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한 선구자적 노력을 폄훼하며 단지 노벨상을 받기 위해 그런 일을 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불완전하고 작으나마 오늘 한국인이 누리고 있는 평화의 줄기가 6.15 정상회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과 김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계속 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진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의 오해가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평화의 길은 멀고 험하다. 그 험난한 길 앞에 서있는 국민들이 통합되지 못한 채 사분오열돼 있는 것도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는 무섭게 변해가고 있는데도 지난 시대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처리를 둘러싸고 국회가 보이고 있는 저 지루한 싸움을 보면 답답할 뿐이다.
외부적으로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우리민족에게 크나큰 도전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만난 이후 부시 대통령의 목소리가 다소 부드러워졌고 일방주의 대신 다자주의를 선택하겠다는 조짐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강경 노선을 추구해온 라이스가 국무장관에 내정되고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유임되는 것을 보면 한반도에서 북한 붕괴론 내지 북한 위협론은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놀라운 성장도 한반도에는 너무나 큰 위협이다. 문명충돌을 예견한 저명한 정치학자 헌팅턴은 이미 충돌하고 있는 아랍문명권보다는 중국의 유교문명이 장차 미국에 대해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앞으로 미, 중국간의 경쟁이 과거 미, 소 경쟁만큼 위험할 것 같지는 않지만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치열해질 때 한국의 외교는 매우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이 틈바구니에서 자주외교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질 것인데 노 대통령이 이번에 미주와 유럽을 순방하면서 그와 같은 메시지를 전한 것은 위험 요소도 있지만 대체로 잘했다는 견해도 많이 있다. 우리는 자주가 곧 반미라는 등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부 국내 정치학자들이나 대부분의 재미 동포들은 한국은 무조건 미국의 정책을 따라가야만 하는 숙명론적, 자포자기적 숭미사상에 빠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끝없는 인명의 살상과 문명의 파괴를 목격하면서도 전쟁불가피론을 옹호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북한을 포함해 누구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확인시켜 나가는 것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나라의 국민이 해야 할 일이다.
어떤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김용현/한미평화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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