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 청훈아, 경철아!
못다 피고 간 꽃들아. 너희들 또래와 연극놀이 하다 말고 28년 전에 훌쩍 이민을 떠나가 버린 것이 가슴의 못이 되어 내 땅 어린이를 위해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해보려고 조국을 찾아온 이 할애비가 신문에서 그리고 텔리비전 화면에서 너희들 삼 형제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단다.
그 누가 너희들을 못다 핀 꽃으로 시들게 하고 말았니? 새벽녘, 아직도 별들이 밤하늘에 반짝이고 있는 그 시각에 너희들은 엄마 품에서 고이 잠들고 있어야 할텐데 왜 어린 너희들만이 잠들고 있어야만 했니? 순경인 아빠는 그 시각에 데모를 막느라고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지.
그리고 엄마는 아빠의 봉급만으로는 집안 살림을 꾸려가기가 어려워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신문배달을 하고 있었다지. 이 할애비가 사는 미국에서는 너희 또래 나이의 애들을 혼자 집에 두면 엄마 아빠가 벌을 받는데 말이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너희들을 홀로 집에 내버려두고 싶어 두었겠니? 이 모든 잘못은 너희들 집 같은 가난한 살림을 돌보지 않는 이 나라의 잘못이 아니겠니.
정치하는 아저씨들이 국회에서 고함질 치고, 욕지거리하고, 삿대질하고, 또 멱살잡이 하고 싸우는 싸움이 너희 집같이 못 사는 백성을 잘 살기 위한 싸움질이라면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그렇지 못한 패거리들의 깡패싸움 같아서 용서받지 못할 짓들이 아니겠니.
너희들의 죽음 앞에 너희들 엄마는 그저 ‘미안하다, 미안하다!’라고 울부짖고 있지만, 정작 너희들에게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어야 할 자는 너희들을 짧게 살다 가게 한 이 나라가 아니겠니.
이 할아버지는 못다 피고 간 너희들 사진 앞에 바쳐진 많은 꽃송이들을 보았단다. 하지만 너희들은 그 꽃들을 볼 수도 없고 그 향기조차도 맡을 수가 없으니 그 꽃들이 너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이 나라가 너희들이 살아 있었을 때 좀 더 잘 보살펴 주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너희들의 죽음을 애석해 하며 많은 성금이 들어 왔다더구나. 하지만, 너희들을 저 세상으로 떼어보낸 이 마당에 너희들 엄마, 아빠에게 그 성금이 무슨 소용이 있겠니. 너희들이 살아 있었을 때의 쥐꼬리만한 아빠의 월급과 엄마가 신문배달해서 번 돈이 차라리 값어치가 있었는데 말이다.
정민아! 너는 일기장에 중국으로 여행가고 싶다고 적었더구나. 그런데 너는 가고 싶은 중국 땅으로 여행도 못 가보고 두 동생과 함께 하늘나라 쪽으로 영영 떠나가 버리고 말았구나. 이 할애비는 너의 일기장 얘기를 듣고 또 한번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단다. 하지만 정민아 하늘나라가 중국 땅보다 더 아름답고 외로움도 슬픔도 없는 좋은 곳이 아니니.
정민아, 청훈아, 경철아!
너희 엄마가 ‘미안하다, 미안하다’라고 울부짖듯이 이 할애비도 미안하다고 너희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구나. 왜냐하면 내가 한국 땅에 그대로 머물고 있으면서 너희들 또래를 돌보지 않고 내 혼자 편하게 살아보겠다고 남의 나라로 가버린 데 대한 죄책감에서 말이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나라의 잘못으로 못다 피고 시들고 만 너희들이지만 부디 하늘나라에서 삼형제별이 되어 너희들을 가슴에 묻고 허구한 날 눈물로 지새우는 엄마의 옷자락에 별똥이 되어 떨어져 안겨 주려무나.
주 평 아동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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