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로 유명한 미치 앨봄은 그의 또 다른 소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에서 천국을 ‘내 삶에 일어났던 일들이 이해되는 곳’으로 해석한다. 소설이라기보다 어른들을 위한 우화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 에디는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 서로의 삶이 교차했던 다섯 사람을 차례로 만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놀랍게도 에디가 기억조차 못하는 사람도 들어 있다.
에디를 기다리고 있던 첫 번째 남자는 야구공을 줍기 위해 차도에 뛰어든 에디 때문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한 사람이다. 그러나 에디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그 일로 죄책감에 시달린 적도 없다. 그가 에디에게 나타난 것은 에디에게 책임을 일깨우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란 원래 알게 모르게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부당해 보이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 역시 다른 사람(심지어 내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에게 부당한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불교의 업이나 인과응보의 개념과도 상통한다.
“그 일로 당신이 죽은 줄은 몰랐다”면서 “그건 당신에게 너무 불공평한 일이었다”고 부르짖는 에디에게 그는 “삶과 죽음은 공평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들려준다. “그렇지 않다면 좋은 사람이 죽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눈에는 우연처럼 보이고 불공평해 보이지만 끊임없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통해 세상은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힘을 자연의 섭리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절대자의 섭리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마치 옷감을 짜는 일과도 같아서 씨실과 날실이 얽히는 순간에는 그것이 훗날 지어낼 무늬를 전혀 알 길이 없다. 오로지 시간이 가면서 우리는 그 모습을 조금씩이나마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읽은 지 꽤 오래된 이 책이 새삼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 연말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 천국이 내 삶 속에 일어났던 일들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곳이라면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우리가 천국을 향해 조금씩 가까이 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우리가 나이 먹어가면서 한층 겸손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옷감을 짜는 직조자가 아니라 씨실이나 날실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 세상의 균형을 이루어 가는 그 절대적인 힘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 그것은 결코 오만한 젊은 날에는 터득되기 어려운 지혜요 겸손함이다.
“별로 해 놓은 일도 없이 어느덧 한 해가 다 가버렸다”는 허망감과 우울함이 밀려올라치면 “나는 내가 그래도 조금은 겸손해 졌구나”하는 자각 속에 위로를 얻는다. 그러고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그다지 나쁜 일만도 아닌 것 같다. 내년에는 ‘내가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좀 더 지혜롭고 겸손한 모습으로 살고 싶다.
한수민/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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